드레스덴 오케스트라의 연주곡목을 보니 거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일색이다. 그건 이해하고도 남는다. 슈트라우스는 그의 오페라 ‘살로메’와 ‘장미의 기사’를 수도 베를린이나 빈이 아니라 독일 동부의 변방도시 드레스덴에서 초연(初演)했다. 당시 베를린 중앙역에선 드레스덴으로 청중을 실어 나른 ‘살로메 특별열차’ ‘장미의 기사 특별열차’가 운행됐다는 고사도 있다.
슈트라우스가 차기 대표작의 세계 초연 장소로 드레스덴을 선정한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9세기 독일 건축의 거장 고트프리트 젬퍼가 설계한 ‘젬퍼 오페라’는 카를 마리아 폰 베버, 리하르트 바그너 등이 지휘한 명문 오페라일 뿐만 아니라 ‘엘베 강변의 피렌체’라 일컫던 드레스덴 도시 자체가 전 유럽의 관광 명승지였다. 바로크 건축 예술의 보석 드레스덴 시는 그러나 1945년 2월 영미(英美) 공군의 맹폭으로 하룻밤 사이에 폐허가 돼버렸다.
수십만명 학살당한 역사현장
당시 드레스덴은 하이델베르크와 함께 도시의 역사와 아름다움 때문에 연합군의 폭격을 모면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에 밀물처럼 몰려오는 소련의 붉은 군대를 피해온 수많은 난민이 집결해 있었다. 바로 그러한 피란민의 머리 위에 2월 13일 밤 10시부터 다음 날 점심때까지 영미 공군의 비행편대가 파상적으로 카펫을 짜듯 폭탄과 소이탄을 투하했다. ‘융단 폭격’이란 말이 이때 생겨났다. 바로크 왕궁, 성모 마리아 성당, 젬퍼 오페라, 젬퍼 미술관 등도 잿더미가 됐다. 학살된 도시 드레스덴! 이때 희생된 인명은 확인된 수만 6만 명. 그러나 온 가족이 동유럽에서 피란 와서 몰살된 경우는 통계숫자에 잡힐 수가 없어 실제 사망자 수는 20만 명을 상회할 것이란 말도 있다.
‘난징! 난징!’은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난징 대학살을 주제로 한 루촨(陸川) 감독의 영화작품. 1937년 12월 13일부터 6주 동안 자행된 당시 일본군의 잔혹행위는 일본의 동맹국 나치조차도 ‘야수의 행위’라 역겨워했었다. 난징의 피살자는 최소 26만 명에서 최대 35만 명. 그 수는 미군의 도쿄 대공습 희생자(8만∼12만 명)보다 많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희생자(각각 14만 명과 7만 명 추산)보다 많았다.(아이리스 장 ‘난징 대학살’)
그러나 일본과 독일, 유럽과 동북아의 전후 역사는 갈라진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국(미국 영국)과 추축국(일본 독일)은 다같이 인도주의적 견지에선 용서 못할 만행을 네 도시(난징과 아우슈비츠, 드레스덴과 히로시마)에서 저질렀다. 난징과 아우슈비츠에선 일본과 독일이 가해자였고 드레스덴과 히로시마에선 독일과 일본이 피해자였다.
종전 후 패전국 독일은 드레스덴의 희생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다만 1985년 5월 종전 40주년 기념으로 세계인의 가슴을 친 명연설에서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우리는 1945년을 1933년과 떼어놓으면 안 된다”고 명언하고 있었다. 1933년은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한 해이다. 드레스덴의 피해는 독일 국민 스스로 지도자를 잘못 뽑은 응보라는 뜻이다. 그 대신 독일은 전후 수십 년이 지나도록 나치의 과거를 도의적으로 극복한다는 대의 밑에 아우슈비츠뿐 아니라 다하우, 부헨발트, 베르겐벨젠 등 과거 독일이 가해자가 된 유대인 수용소는 복원을 해서까지 젊은 세대를 위한 현대사 교육의 실습장으로 보존하고 있다.
고개숙인 독일-감추려는 일본
이와는 대조적으로 전후의 일본은 난징은 덮어둔 채 히로시마만 패전 직후부터 오늘날까지 국내외적으로 그 참상을 알리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전개해오고 있다. 1945년과 1941년을, 히로시마와 진주만(眞珠灣)을 온전히 떼어놓은 채…. 이번에 민감한 난징 주제의 영화가 상영되자 일본은 중국 내의 반일 감정을 자극할까 우려하는 모양이다. 그래야 되는 것일까.
독일의 옛 숙적뿐 아니라 과거 나치의 피해를 본 모든 이웃까지 동서독 통일을 환영한 것은 아우슈비츠의 가해자 독일은 얼굴을 가리고 드레스덴의 피해자 독일이 전 세계를 향해 눈물의 캠페인을 벌인 결과일까. 일본이 ‘이웃에 친구가 없는 나라’(헬무트 슈미트)가 된 것은 난징의 가해자 일본을 스스로 너무 세계에 알리고 히로시마의 피해자 일본은 침묵을 지켜온 때문일까.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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