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WAU가 있다면 우리에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있다. 4월 초 9개국 158개 기업이 참가한 ‘2009 서울 모터쇼’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40여 명은 기자회견 중 갑자기 차량에 선지를 뿌리고 이를 제지하던 의경을 폭행했다. 한 달 전 선출돼 “민생과 민주주의를 파탄 내는 이명박 독재정권과 끝장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다짐했던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의 첫 퍼포먼스였다.
▷두 번째 퍼포먼스는 오늘 예고돼 있다.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노동절 집회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민주노총과 “법을 지키면서 시위하겠다”는 내용의 ‘평화시위 양해각서(MOU)’를 지난달 28일 체결했다고 밝혔다. MOU란 본래 국가 간 본조약이나 정식 계약을 체결하기에 앞서 서로 양해한 내용을 확인 기록한 문서다. 청춘남녀가 “우리 결혼하자”고 각서 쓰고 공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약혼도 아니고 아직 결혼한 건 더욱 아니기 때문에 깨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도덕적 책임이야 없지 않겠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다.
▷임 위원장은 지난달 28일 “현장의 분위기는 회사가 살아야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성적 변화로 본다”고 말했다. “동력도 안 되는데 총파업을 남발하는 협박성 투쟁은 하지 않겠다”는 언사도 곁들였다. 그러면서도 노동절 행사를 ‘국민촛불정신계승 MB정권심판 범국민대회’로 열겠다니 현장의 ‘이성적 변화’와는 다른 모습이어서 혼란스럽다. 경찰은 법치에 따라 공권력을 집행하면 그만이지 무슨 본계약할 게 있다고 민주노총과 MOU를 체결한 건가. 법도 잘 안 지키는 사람들이 강제력이 없는 MOU를 지키리라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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