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교황청 생명학술원장 리노 피지켈라 대주교

입력 2009년 5월 1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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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노 피지켈라 대주교는 30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순교성지를 방문한 뒤 “한국 가톨릭교회가 겪은 고난의 역사와 저력을 알게 됐다”며 “하나의 민족, 한 땅에 사는 사람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둘로 나뉘어 사는 비극이 끝나도록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선종 소식은 한국뿐 아니라 로마에서도 곧바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교황청도 명동성당을 둘러싼 수십만 명과 같은 마음으로 기도했고, 그 뜨거운 추모 열기에 놀랐습니다.” 로마교황청 생명학술원 원장이자 교황청립 라테란대 총장인 리노 피지켈라 대주교(58). 기초신학을 연구한 그는 이탈리아에서 권위 있는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특히 가톨릭 교리를 수호하는 교황청 신앙교리성, 시복시성(諡福諡聖·신앙과 덕행이 뛰어났던 사람이 타계한 뒤 복자나 성인으로 추대하는 것)을 담당하는 시성성 위원으로 세계 가톨릭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개원기념 국제학술대회 강연과 한국 교회를 둘러보기 위해 방한한 그를 30일 만났다.》

“金추기경 성인되는 것, 신자들의 지속적 사랑에 달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과 각막 기증 등 고인의 사랑과 나눔 정신이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김 추기경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교회에서 우러러볼 만한 분이었습니다. 4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추모를 위해 모인 것은 생전 그분의 삶이 믿음과 겸손으로 가득했다는 증거입니다. 한 사람이 삶으로 실천할 때 복음을 얼마나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요한 바오로 2세나 테레사 수녀처럼 시성의 길이 빠르게 열릴 수도 있다는 기대가 큽니다.

“시복시성에 관한 절차를 따라야 하지만 가톨릭 신학을 보면 하느님의 백성이 지닌 감정이 신앙의 한 부분이 됩니다. 그분이 돌아가신 뒤 분명 놀라운 일이 있었지만 그 뒤에도 신자들이 그분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표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교황청의 시복시성은 대상자의 경우 사후 5년이 지나야 하고 교회법에 따라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피지켈라 대주교는 시성과 관련한 질문이 거듭되자 “사실 이 문제는 교구에서 청했을 때 교황께서만 허락할 수 있는 사안”이라면서도 “많은 분들이 이후 묘소에 가서 기도하고 사랑을 보여주면 (김 추기경이) 성인품에 오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청 생명학술원은 가톨릭 교리에 따라 생명과 윤리의 가치를 연구, 수호하는 단체다. 과학 철학 신학 등 각 분야에 걸쳐 45개국 180여 명의 회원이 있다. 자연스럽게 정부가 지난달 29일 승인한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화제에 올랐다.

―29일 정진석 추기경과의 만남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 문제를 논의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예. 한국 정부의 배아줄기세포 연구 허용에 대해 깊이 우려했습니다. 현재까지 성과를 거둔 것은 성체줄기세포이지 배아줄기세포가 아닙니다. 교황청에서는 배아 실험이 인간의 생명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히 반대해 왔습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인간의 난자, 생명에 대한 야만스러운 실험입니다. 성체줄기세포나 역분화줄기세포는 난자를 쓰지 않아도 연구가 가능합니다. 좋은 뜻이 있다는 것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점쟁이가 아니라 학자’라고 했습니다. 신학자로서 앞으로 인류가 직면할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학자로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생명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는 겁니다. 낙태, 배아실험에 이어 죽음의 문제가 대두했습니다. DNA 발견과 우생학적 연구를 통해 이제 과학자들이 유전자의 우열을 이유로 누가 태어날지를 결정하고, 죽이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장애가 있다면 태어나서는 안 됩니까? 나이가 먹고 병이 들면 인간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고 죽어야 합니까?”

―건강과 관련된 인간의 권력 남용 문제도 제기했습니다.

“이 세상에 예쁘고 멋있고 잘사는 사람만 살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노인이나 외로운 사람, 가난한 이도 살 수 있고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학이나 경제 논리로 내버려둘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인간은 과학을 통해 자연과 건강에 대한 지배력을 키운 만큼 그 책임도 져야 합니다.”

―종교의 역할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바이러스와 각종 육체적인 질병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계에 가장 널리 퍼져 있고 위험한 병은 ‘마음의 병’입니다. 진정한 사랑으로 내면의 고통을 극복해야 합니다.”

―5월 2일은 불교의 가장 큰 축일인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종교 간 평화를 위해 하실 말씀이 있다면….

“교회는 다른 종교를 존중합니다. 모든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해야 함께 진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종교인들은 마음을 열고 대화해야 합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를 방문할 계획이 있는지요.

“제 목소리가 힘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웃음) 하지만 교황을 뵙게 되면 한국 교회는 물론이고 비신자들까지 방한을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마 분명 아시아 지역을 방문하게 될 겁니다.”

어릴 적 의사가 꿈이었다는 그는 “주님이 부르지 않았다면 사제복 대신 흰 가운을 입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추기경 서임 문제와 관련해 그는 “큰 소리로 외치세요. 그게 들린다면 교황께서도 움직이지 않을까요”라고 덧붙였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리노 피지켈라 대주교

―1951년 이탈리아 코도뇨 출생

―1976년 사제 수품

―1980년 교황청립 그레고리안대 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