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문제와 관련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인 정부는 참여한다는 방침은 지키되 시기는 전략적으로 결정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엄격히 말해 전략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제대로 된 전략적 결정(PSI에 전면 참여한다는)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방법(발표와 관련된 전술적 정교성)에 문제가 있었던 하나의 에피소드로 봐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실제로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현재 한반도 및 동북아, 나아가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새로운 질서 형성과정을 염두에 둔 큰 전략(grand strategy)을 갖고 그 틀과 시간계획 내에서 북핵과 미사일 문제를 포함한 전략과 전술을 검토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北,ICBM위협은 다분히 전략적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에 비하면 북한은 오히려 상당히 전략적으로 행동한다고 봐야 한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달 29일 로켓 발사와 관련한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 움직임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사죄하지 않으면 자위(自衛)적 조치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시험을 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미국에 대한 직접대화의 요구이고 북한이 내부 문제로 다급해진 결과라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더 큰 전략적 의미가 있는 행동이 아닌가 생각된다.
북한의 장기적인 정책 목표는 핵과 장거리 미사일 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어떤 형식으로라도 인정받는 것이다. 중기적으로는 국내정치 대외정책 무기체계(hardware) 등 세 가지 차원의 목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정치적으로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확보를 과시함으로써 김정일 체제의 강건함을 강조하려 한다. 외교적으로 북한은 미국의 관심을 끌어 협상의 우위를 확보하려 한다. 무기체계 면에서 북한은 새로운 실험을 감행함으로써 과거에 미진하거나 실패했던 실험을 보완하고 대량살상무기와 운반수단을 완성하려 한다. 요컨대 선군정치를 통해 강성대국을 만들어 보겠다는 구상이다.
북한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희생을 치르더라도 핵과 미사일 보유국이 되겠다는 목적을 갖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을 전개해왔다. 북한은 ‘벼랑 끝 전술’도 구사하고 ‘통 큰 협상(grand bargain)’으로 유인도 해 보고 흥정의 대상을 여러 조각으로 자르는 ‘살라미 전술’도 시도했다. 이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북한을 제재 조치한 일을 사죄하라고 요구할 정도의 자신감까지 갖게 되었다.
한국과 미국 등 정권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민주국가에서는 북한과 같이 일관성 있게 목적의식을 갖고 전략과 정책을 추구하기가 어렵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들도 북한의 전략적 행동에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행동을 ‘무모한 짓’으로 치부하여 그것이 자충수(自充手)가 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 2002년 이후 7년간 한국과 미국 양국 정부는 북한이 핵 활동을 재개해도(2003년), 핵무기 보유를 선언해도(2005년), 핵무기를 실험해도(2006년) 선언적인 조치 이외의 대응을 자제했다. 사실 북한으로서는 그들의 무기 개발에 ‘레드 라인(금지선)’도 없고 협상에 ‘타임 라인(시한)’도 없다고 판단할 만했다. 지난번 북한이 한국의 PSI 참여를 문제 삼기는 했지만 로켓 발사 후 한국이 PSI 전면참여를 선언했더라도 그것이 전략적 대응은 될 수 없었다.
한반도 미래 청사진 준비할 때
키신저가 위의 칼럼에서 지적했듯 유엔 안보리의 5대 강국과 한국 등 6자 회담 당사국의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로 세계질서에 큰 교란을 초래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의 신정부는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또 북한의 정책과 전략에 어떠한 효과적인 전략과 방책으로 대응할 것인가를 심도 있게 협의해야 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처하는 데는 전시작전통제권 이전 문제의 재검토를 포함한 동맹관계의 강화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한반도 주변 강대국의 새판 짜기가 본격화되는 전환기적 시점에서 한반도의 장래까지 염두에 둔 긴 안목의 총체적인 전략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전 외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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