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2년 전인 2007년 5월 4일 한나라당의 ‘대선주자 빅2’ 이명박, 박근혜 씨가 서울 염창동 당사에서 웃는 얼굴로 손을 잡았다. 당시 강재섭 당 대표는 “당사가 모처럼 환하게 밝아졌다”며 반색했다. 그러나 비공개 회동에 들어가자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두 사람은 대선후보 경선 룰 문제로 얼굴을 붉혔고, 직전에 치러진 4·25 재·보선 참패 책임과 네거티브 경선운동에 대해 가시 돋친 설전을 벌였다.
그로부터 2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두 사람은 ‘정권의 빅2’로 숙명적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한 사람은 대통령이고 한 사람은 평의원이지만 팽팽한 긴장관계다.
진정한 화해 못하면 李-朴다 敗者
2007년 8월 20일 당 대선후보 경선은 숨 막히는 박빙의 승부로 막을 내렸다. 박 후보는 당원, 대의원, 일반국민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 후보를 0.3%포인트 앞서고도 여론조사 열세로 결국 1.5%포인트 뒤졌다. 분패가 확정된 순간 “저 박근혜,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고 당의 염원인 정권 교체를 위해 백의종군 하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그날 마침 다른 칼럼을 쓰고 있던 나는 TV 생중계로 이 장면을 보고 ‘박근혜, 빛났다’라는 새 칼럼으로 바꿔 쓰기 시작했다. 간발의 승리에 가슴을 쓸어내린 이 후보는 “5년 안에 선진국을 만들자는 존경하는 박 후보의 공약을 함께 이루어나가겠습니다. 빼고 줄이는 정치가 아니라 보태고 또 보태는 덧셈정치를 만들어나가겠습니다”라고 연설했다.
그날의 경선을 끝으로 두 사람이 진실로 숙적 관계를 해소했다면 어땠을까. 10년 만에 정권을 탈환한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지난 1년간 국민을 위해 훨씬 많은 일을 해냈을 것이다. 그랬다면 한 사람은 ‘성공한 대통령’이, 다른 한 사람은 ‘다음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도 상대에 대한 불신을 털어내지 못해 지금으로선 진정한 화해의 길이 안 보인다. 잘잘못을 상쇄한 뒤 어느 쪽이 더 문제인지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사람 사이나 세력 간에나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식의 타산으로는 참된 포용과 화합이 가능하지 않다. 그런 걸 뛰어넘어 서로 희생하고 배려해야 비로소 함께 이기는 길이 열린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내가 대통령이 된 이상 국내에는 어느 당에도 경쟁자가 없다” “경쟁자는 외국 지도자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럼에도 이른바 친이(親李)그룹 사람들은 친박(親朴) 사람들을 경계한다. 박 전 대표 측이 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고 할 것이라는 공포감마저 드러낸다. 그러나 이는 이 대통령을 위한 걱정이 아니라 자기네 밥그릇을 빼앗길까 봐 그러는 것 같다. 이 대통령이 친이, 친박을 가리지 않고 담대하게 대화합 인사를 하며 행동으로 계파를 허물었더라면 리더십이 오히려 빛나고 튼튼해졌을 것이다.
큰 정치를 해야 할 인물이 작은 정치에 연연하면 국민은 실망한다. 오늘의 정권은 이명박 정권인 동시에 한나라당 정권이다. 그런 점에서 특히 박 전 대표는 정권 성패의 공과(功過)를 나누어가질 수밖에 없다. 그럴 용의가 없다면 정권의 빅2라 할 수도 없다. 국민은 이 정부가 작년 2월 출범 이후 몇 번 고비를 맞았을 때 박 전 대표가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 기억할 것이고, 앞으로는 어떨지도 지켜볼 것이다.
與野역전은 언제든지 가능
정치는 물론 현실이다. 지난달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했으니 그 충격을 에너지 삼아 쇄신과 화합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앞뒤 가리지 않고 갈아엎는다고 될 일은 아니다. 당-정-청 물갈이도 하고, 국정운영 방식도 개선해야겠지만 정권의 성공과 지속을 위해서는 그 이상의 전략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통찰력과 협력이 더욱 긴요하다.
한나라당은 계속 분열의 수렁에서 헤매고, 민주당은 그간의 지리멸렬한 모습에서 극적으로 벗어나 신선한 ‘아이콘 인물’까지 창출해낸다면 앞으로 일련의 선거에서 여야 역전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정치는 영원한 승자 없는 드라마이고, 이를 만드는 것은 민심이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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