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듈의 의미는 가치사슬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미디어산업의 가치사슬은 한 꼭지의 기사나 버라이어티쇼 코너와 같은 콘텐츠 모듈의 생산, 이들을 상품으로 묶는 번들링 작업, 시장 판매를 통한 상품의 배포 등으로 이루어진다. 모듈은 그 자체만으로도 시장 판매가 가능하다. 모바일 뉴스는 콘텐츠 모듈을 상품화한 대표적인 예다. 데이터 관리시스템, 저가의 정보저장기술, 콘텐츠 복제기술 등은 콘텐츠 모듈을 저장하고, 손쉽게 다양한 형태로 묶으며, 효율적으로 소비자에게 배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반기술이다. 아날로그시대에는 소비자가 구매하는 배포단계에서만 가치가 형성되지만 디지털시대는 단계마다 가치를 창출해낸다.
미디어기업은 최초생산인 콘텐츠 모듈 생산에 많은 비용을 투입한다. 기자들을 먼 나라까지 보내 취재하도록 하고, 팀을 짜서 오랜 시간 사건을 파헤치기도 한다. 아날로그 체제였다면 비용의 회수는 콘텐츠의 판매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디지털에서는 비용이 상품으로 묶는 과정으로 옮겨져 다양한 형태의 번들링 상품으로 분산된다. 모듈화의 수준이 높을수록 최초생산비용은 더 잘게 쪼개지므로 투자부담이 훨씬 줄어든다. 상품의 수가 많아지게 되니 당연히 매출창출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콘텐츠 묶는 과정서 가치창출
이 논리대로라면 비용의 분산과 매출의 증대라는 기업행위의 두 가지 절대고민은 손쉽게 해결될 수 있다. 그런데 왜 미디어기업의 성공은 드문가. 뉴스산업처럼 왜 오히려 퇴락하기도 하는가. 모듈과 가치사슬의 관계에서 보았듯이 콘텐츠 모듈을 묶는 것이 핵심인데 이게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번들링을 위한 설계, 즉 번들링 디자인이 문제다. 단위 콘텐츠를 단순히 한데 모으면 되는 일반적인 상품과 달리 미디어상품은 인간의 인식이 개입할 수밖에 없어 어렵다. 뉴스상품이 대표적인 경우다. 원자료인 사실정보라는 모듈에 취재기자의 경험, 간부의 판단, 수용자의 기대치 등이 다 녹아 들어가도록 번들링을 디자인해야 한다. 디자인은 역으로 콘텐츠 모듈의 생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단순한 기계적인 작업이 아니다. 신문마다 논조가 다르고, 채널마다 편성이 다른 것은 번들링 디자인의 차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번들링의 차이를 인식하고 번들링이 만들어 내는 차별적 가치를 구매한다.
번들링 디자인의 어려움은 아날로그시대에도 존재했지만 대부분 단일 번들링으로 끝났다. 매일 발간하는 한 판의 신문만 디자인했을 뿐이다. 디지털을 아날로그와 결정적으로 구분하는 경계는 결국 번들링의 다양화, 다각화라고 할 수 있다. 작금의 미디어 구조개편을 모듈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도와 규제의 완화도 이런 눈으로 보면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다시 미디어산업의 가치사슬로 돌아가자. 콘텐츠 모듈의 생산을 꼭 이를 묶고 판매하는 거대 미디어기업이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디어기업이 자신의 미디어 콘텐츠를 직접 생산할 수 있지만, 다른 생산자나 신디케이터를 통해 구매할 수도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콘텐츠 모듈 공급자들을 육성해 모듈 생산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플랫폼을 가진 사업자만이 아니라 개미군단도 키워 내야 한다.
매체 진입장벽 허물어야 발전
번들링 작업은 그야말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창조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한다. 같은 종류의 콘텐츠만으로 번들링할 수도 있지만 이종콘텐츠를 이용하는 복수 번들링 등 번들링의 한계는 없다. 이를 위해서 매체의 종류와 상관없이 미디어 상품을 공급할 수 있는 플랫폼 중립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구체적 방법론의 문제가 있겠지만 매체겸영을 적어도 총론 차원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것도 플랫폼 중립의 중요성 때문이다.
배포단계의 가치를 확대하자면 비즈니스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각기 다양한 성격을 갖게 되는 번들링 상품들을 시장에서 효율적으로 거래하기 위해서는 미디어기업 운신의 폭이 넓어야 한다. 사업다각화가 필요하다. 미디어상품의 제작과 판매뿐만 아니라 애프터서비스, 신디케이팅, 복제 등 다양한 사업방식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을 바꾸면 많은 것이 보인다. 모듈의 논리는 좀 더 많은 것을 찾아낼 수 있는 좋은 눈이라고 할 수 있다.
김사승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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