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한국판 헤리티지 재단

  • 입력 2009년 5월 19일 02시 55분


미국 헤리티지 재단은 이른바 ‘레이건 혁명’에 큰 영향을 미친 민간 정책 연구기관이다. 1981년 긴급 정책 어젠다로 내놓은 ‘리더십 지침’에 담긴 약 3000건의 개혁안 가운데 60% 이상이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으로 채택됐다. 헤리티지는 자유시장, 자유무역, 강력한 국방, 전통적 가치, 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월스트리트저널과 공동으로 1995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세계 경제자유지수도 국제적 영향력이 크다.

▷1973년 설립된 이 재단은 정치 경제 안보 외교 교육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룬다. 헤리티지를 비롯한 미국의 우파 싱크탱크들은 1970년대 이후 자유와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미국사회의 흐름을 바꾸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서민과 소수’를 팔면서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위선적 지식인들을 ‘리무진 좌파’라고 규정해 막연히 좌파를 도덕적 선(善)으로 간주해온 사회인식을 많이 바꾸어냈다. 요즘 한국의 ‘강남 좌파’나 ‘입만 진보’도 미국의 리무진 좌파를 닮았다. ‘좌파업(左派業)’으로 재미 봐 자신은 고품질의 삶을 향유하고 자식들은 외국으로 유학 보내는 사람도 허다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과 일해재단 후신인 세종연구소를 통합해 ‘한국판 헤리티지 재단’ 성격의 싱크탱크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경연은 경제 분야가 주특기이고 세종연구소는 외교안보 분야 연구진이 많다. 한경연은 말할 것도 없고, 거슬러 올라가면 세종연구소의 당초 설립 재원도 전두환 정권 때 대기업들이 낸 돈이다. 군사정권이 만든 싱크탱크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친북 또는 종북(從北) 정책을 뒷받침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지만….

▷우리 기업들은 좌파정권 10년 동안 자주 비겁한 행태를 보였다. 재계가 일부 세력의 악의적 공세에 맞서 ‘대한민국 체제’를 지키려는 노력을 열심히 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시장(市場)과 기업에 적대적인 각 분야 좌파집단에 뒷돈을 대주고도 뒤통수만 맞곤 했다. 한국에도 정권의 향배에 관계없이 자유민주의 가치를 뒷받침하는 독립적 싱크탱크가 뿌리를 내릴 때가 됐다. 한국판 헤리티지 재단 설립에 재계도 적극 동참했으면 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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