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를 지낸 다이앤 래비치는 2000년 ‘레프트 백-학교개혁에 실패한 1세기’란 책에서 이른바 진보개혁이 교육을 병들게 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갖가지 교육운동이란 것은 교육을 망치는 전염병이다.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훌륭한 교사다”라고 요약했다.
18일 전교조 창립 20주년 기자회견에서 정진후 위원장은 ‘학교교육 혁신운동, 즉 제2의 참교육운동’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무한경쟁을 부추기고 학교를 학원화(學院化)해 창의력을 기르는 교육을 고사시키고 있다”며 “이명박식 경쟁교육 정책을 심판하고 ‘아이들을 중심에 두는 실천운동’을 펴겠다”고 밝혔다.
전교조는 지난해 ‘아이사랑교육 희망캠페인’이라는 라디오 광고를 몇 번 냈다. 거기서 전교조는 ‘등수 없는 학교’ ‘성적보다 사랑’ ‘학원 대신 더불어 사는 삶’ ‘아이들이 푹 자고, 세끼 밥 먹고, 적당히 운동할 수 있도록’ 등을 강조했다.
‘공교육 붕괴’ 책임부터 인정해야
지난주 스승의 날 즈음 라디오 좌담에 나온 어느 인사는 ‘학생들이 학교 교사보다 학원 강사한테 훨씬 좋은 선물을 하는데, 이는 당연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고민 상담도 학원 강사한테 하지, 학교 교사한테는 잘 안한다는 얘기였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존재, 믿을 만한 선생이 누구인지 안다는 거다. 전교조는 ‘성적보다 사랑’을 내세우지만 ‘사랑’에서조차 학교가 학원에 밀리고 있는 게 아닌가.
2002년 미국 미주리대 교수 마틴 로체스터는 ‘교실 전쟁’이란 책에서 미국 공립학교를 병들게 한 것은 ‘균등주의적 진보주의’라며 진보포퓰리즘 교육을 비판했다. 좌파 교육이론에 젖은 교사들이 학생들을 하향평준화로 몰아가면서, 자신들은 교원노조를 통해 막강한 기득권을 챙긴다는 것이다.
전국 1만1327개 초중고의 학교정보가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내주에 공시될 예정이다. 학교별 전교조 소속 교원 수도 공개되지만 그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아마도 많은 학부모들은 그것이 알고 싶을 것이다. 어느 교사가 어떤 교원단체에 가입했는지는 프라이버시가 아니다. 그러나 전교조 측은 명단 공개에 한사코 반대한다. 전교조 교사들이 정말 잘 가르쳐 학원 강사들이 명함도 못 낼 정도라면 ‘명단 공개’를 꺼릴 이유가 없다.
‘아이들을 중심에 두는 학교교육’이란 어떤 것인가. 학생 학부모가 사교육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도록 학교가 학원 이상으로 알찬 교육을 하고, 이를 위해 교사들이 좀 더 희생하는 것이 ‘아이들 중심의 교육’ 아니겠는가. 학교 수업이 더 만족스러우면 학교에선 잠자고 방과 후엔 학원으로 내달리는 아이들도 줄어들 것이다. 이런 것이 전교조도 강조하는 ‘공교육의 정상화’다.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몰고서는 ‘참교육’을 말할 자격도 없다.
총체적으로 아이들의 경쟁력을 키워주는 것이 ‘아이들 중심 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전교조가 ‘세계화’에 아무리 반대해도 아이들이 세계화를 피해서 살아갈 방법은 없다. 월스트리트발(發) 금융위기가 우리네 안방경제를 뒤흔드는 시대다. 그런 점에서 글로벌 경쟁력까지 길러주는 교육이 ‘아이들 중심 교육’이다. 전교조는 ‘창의력 교육’을 되뇌지만 학력(學力)을 높여주지 못하면서 창의력은 키워줄 수 있는가.
경쟁 거부하니 學院에 지는 것
결국 교사의 질이 문제다. 교원평가는 안 받겠다, 성과급도 나눠먹겠다 하며 무(無)경쟁에 안주하는 교사들이 경쟁을 체질화한 학원 강사들보다 잘 가르칠 수는 없다. 교사들의 경쟁력도 경쟁구조에서 생기지, 하늘에서 떨어지지는 않는다. 교사가 강사만큼 경쟁하지 않으면 학교가 학원을 이길 수 없고, 공교육 정상화는 공염불일 뿐이다. 교사들의 경쟁력이 학원 강사보다 높으면 아이들의 신뢰와 존경도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전교조는 ‘경쟁보다 평등’을 앞세우지만 교육제도가 어떻게 바뀌더라도 학생 학부모는 경쟁을 피할 수 없다. 학생 학부모가 무한에 가까운 경쟁을 하는데, 교사들이 무경쟁 구조를 고수하려 한다면 직무를 유기하겠다는 뜻이다. 전교조는 ‘공교육 붕괴’의 책임을 경쟁교육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큰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이제부터라도 ‘운동’ 아닌 ‘교육’을 제대로 하기 바란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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