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친구는 걸음을 멈추고 더욱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소년을 보았습니다. “저건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양이지, 바람이 보이는 게 아냐.” “바람이 부니까 나뭇잎이 흔들리는 거잖아.” “그래도 바람은 보이지 않아. 이 세상 누구도 바람을 본 사람은 없어.” 친구는 어른스러운 어조로 의젓하게 말했습니다.
친구의 말을 듣고 소년은 바람이 아니라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형상을 묵묵히 지켜보았습니다. 친구의 말처럼 바람의 형상은 보이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형상만 보였습니다. 그 순간, 깊고 깊은 의구심 한 가지가 소년을 사로잡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눈에 보이는 것이 움직이는 이치는 무엇일까.
세월이 흘러 소년은 어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바람에 대해 지녔던 근원적인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움직이게 만드는 근원 이치를 깨치지 못하는 한 인생의 무지가 스러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하지만 대답은 얻지 못하고 바람과 같은 것이 또 한 가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도 또한 바람처럼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의구심은 더욱 커지고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무엇이 바람을 움직이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가.
어느 바람 부는 밤, 그는 길을 가다가 어린 시절 자신이 겪은 일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백발노인 둘이 공원 벤치에 앉아 깃발이 펄럭이는 모양새를 보며 선문답을 하듯 띄엄띄엄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저건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닐세.” “그럼 움직이는 것의 실상은 무엇인가?” “실상은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지. 깃발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깃발을 따라 마음이 움직이고, 바람이 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람을 따라 마음이 움직이는 것일세.”
“그럼 마음은 왜 움직이는 것인가?” “그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일세. 살아 있으니 마음이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니 몸이 움직이는 것 아닌가. 바람도 마음과 같아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흔들리게 만드네. 때로는 태풍과 폭풍이 휘몰아칠 때도 있지만 마음과 바람이 없는 인간과 세상을 상상해 보게. 생명의 진동을 무슨 수로 느낄 수 있겠나?”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때 어린 시절처럼 별똥별 하나가 긴 사선을 그으며 그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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