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트로피 남편

  • 입력 2009년 5월 23일 03시 00분


남자는 왜 젊고 예쁜 여자를 좋아할까. 진화론적 시각에서 보면 간단하다. 그래야 좋은 유전자를 지닌 자손이 번성하기 때문이다. 남자들만큼 내놓고 말하진 않지만 여자도 돈 많고 똑똑하고 잘난 남자를 좋아한다. 부와 권력이야말로 자식을 지켜줄 수 있는 최고 방패막이인 까닭이다. 이렇게 생물학적 진화로만 따진다면 재력 권력을 갖추느라 나이가 든 남자와, 젊고 예쁜 여자의 결합은 최상일 수 있다. 그런 남자와 결혼한 여자를 시상식 때의 화려한 트로피 같다고 해서 ‘트로피 와이프’라고 한다.

▷신성한 결혼에 대한 모독이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하므로 결혼한다’는 풍습도 겨우 300년 전에 생겨났다. 동서양의 오랜 역사에서 본디 결혼이란 다른 공동체나 가문이 협동관계를 맺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동맹이었다. 사랑의 유효기간도 100일 설(說), 15개월 설이 있고 그중 긴 것이 4년 설이다. 결혼 20년차 부부 중 맨 처음 사랑을 느꼈을 때와 똑같은 로맨틱하고도 강박적인 감정을 유지하는 경우는 10쌍 중 1쌍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는 터다.

▷문제는 돈도 권력도 없는 젊은 남자와, 젊지도 예쁘지도 않은 여자다. 남자는 나이가 들어도 금력과 권력을 누리고, 여기다 사랑까지 얻을 수 있지만 여자는 나이 들면 남자 같지 않다. ‘경제학 콘서트’를 쓴 팀 하퍼드는 “부와 권력의 남자가 도시에 많으니 여자들도 남자를 찾아 도시로 왔고, 그러다 도시엔 여자가 더 많아졌다”고 했다. ‘섹스 앤드 더 시티’ 드라마처럼. 슬프게도 남자 수가 여자 수에 비해 단 한 명만 부족해도 여자들의 교섭력은 극도로 약해진다. 결국 여자가 눈을 낮춰야 한다는 얘기다.

▷200억 원대의 재산을 가진 여성 사업가 박모 씨가 공개청혼을 해서 화제다. 일만 하다 혼기를 놓친 마흔아홉 살의 골드미스다. 조건은 동갑부터 열 살 연하까지의 대졸 이상 전문직 미혼 남성. 결혼정보업체 선우 측은 “남자들이 여전히 젊고 예쁜 여자만 찾기 때문에 암만 골드미스라도 결혼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했다. 공개청혼을 한 덕에 24시간 만에 신청자가 200명이 넘었단다. 나이가 좀 많은 부호 신부가 ‘트로피 남편’을 갖는다고 해서 흉될 건 없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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