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시작한 미국 NBC 리얼리티 쇼 ‘수습사원(Apprentice)’에서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는 출연자들에게 가차 없이 “당신은 해고야(You are fired)”라고 내뱉는다. 16명의 참가자 가운데 끝까지 살아남은 한 명만이 25만 달러의 연봉이 걸린 트럼프사 정식 직원이 될 수 있다. ‘배첼러(The Bachelor)’나 ‘템프테이션 아일랜드’는 노골적인 짝짓기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이다. 출연한 남녀는 상대를 유혹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이런 인기 리얼리티 쇼 포맷을 한국 방송계가 그냥 지나칠 리 없다. ‘패밀리가 떴다’나 ‘1박 2일’과 같은 프로그램은 리얼리티 쇼라고 하기엔 의도된 연출이 너무 많다. 한국의 본격적인 리얼리티 쇼는 케이블 TV가 주도하고 있다. ‘서인영의 카이스트’ ‘애완남 키우기 나는 펫 시리즈’는 주인공이 실제 상황에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으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미국 리얼리티 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의 판권을 사들여 똑같은 포맷으로 제작된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는 케이블 TV로는 높은 2%대의 시청률을 보이기도 했다.
▷영국의 ‘브리튼스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를 통해 깜짝 스타가 된 노처녀 수전 보일(48)이 결승전 패배 후 정신적 충격으로 입원했다고 한다. 리얼리티 쇼는 최종 승자가 상금, 애인, 명성을 모두 차지하는 구조다. 모든 것이 노출된 상황에서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이 이런 치열한 경쟁을 감내하기는 쉽지 않다. 참가자들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노출하고 감정에 상처를 입히면서 오락 기능만 극대화하는 리얼리티 쇼를 무작정 즐길 일인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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