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대문 안을 가득 채웠던 그 많던 한옥들은 개발 연대를 거치면서 급속히 사라졌다. 한옥을 허문 자리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으나 한옥 툇마루에 앉아 따사로운 햇볕을 쪼이며 정겨운 대화를 나누던 지난날의 운치는 찾아볼 수 없다. 종로를 따라 길게 형성된 피맛골 거리가 지난 몇 년 사이에 대대적인 재개발로 상당 부분 사라지면서 서울 도심에서 전통 서민거리도 거의 소멸 단계에 이르렀다.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에 위치한 이른바 북촌(北村)의 한옥들이 재조명을 받고 있는 점이다. 콘크리트로 된 현대식 건축문화에 식상한 사람들이 북촌의 한옥을 사들여 살기 편하게 고친 뒤 입주하면서 이 지역이 전통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서울시는 경복궁 서쪽에 있던 옛 서촌(西村)에 대해서도 한옥 보존을 계획하고 있다. 문화재 전문가 사이에는 경복궁과 북촌, 서촌을 한데 묶어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자는 아이디어도 나온다.
▷1974년부터 서울 동소문동 한옥에서 살아온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 씨가 주변의 재개발 사업으로 자신의 집이 헐릴 위기에 처하자 다른 주민들과 함께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계속 한옥에 살고 싶으니 재개발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요청을 1심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한옥은 나무 흙 기와 등 자연 자재로 지어져 좋을 뿐 아니라 어디를 보아도 미술이자 예술’이라며 예찬론을 편다. 북촌 한옥들은 집값이 급등해 어느새 서울에서도 부자 동네가 됐다. 일부 주민은 아직도 재개발을 선호하지만 갈수록 전통의 가치를 더 쳐주는 세상이 올지 모른다. 북촌 한옥의 부활은 주민의 갈등을 조정하면서 한옥을 살릴 수 있는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