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 얼음을 깨는 쇄빙선(碎氷船·icebreaker)이 있었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최초의 증기 쇄빙선은 1837년 미국 필라델피아 시가 제작한 ‘시티 아이스 보트 넘버 원’이었다. 그러나 연안의 작은 얼음을 깨는 배였다. 전인미답(前人未踏)의 남극 대륙이 석유와 광물자원의 보고임이 드러나면서 강대국 간에 탐사경쟁이 불붙었다. 그러다 보니 쇄빙선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제대로 된 쇄빙선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이 4척을 건조했고 1959년 구소련은 원자력으로 운항되는 쇄빙선 ‘레닌호’를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세계 1위의 조선(造船)강국이지만 쇄빙선에서는 앞서가지 못했다. 바다가 얼지 않아 국내 수요가 없고, 핀란드 노르웨이 같은 쇄빙선 강국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남극에서 각국 간 탐사경쟁이 불붙으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남극기지를 갖고 있더라도 성능이 뛰어난 쇄빙선이 없으면 연구 및 탐사활동이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한국은 1988년 남극에 세종기지를 열었으면서도 지금까지 연구에 필수적인 쇄빙선 한 척 없었던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2003년 남극의 차가운 얼음바다가 고무보트를 타고 동료를 구하러 나선 27세의 연구원 전재규 씨를 삼켰다. 쇄빙선 한 척만 있었더라도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전 씨의 못다 이룬 꿈을 실은 한국 최초의 쇄빙선 ‘아라온호’가 8월 진수를 앞두고 막바지 점검을 받고 있다. 쇄빙선은 배 앞쪽 물탱크의 물을 뒤로 보내 뱃머리가 들리게 한 후 강한 무게로 얼음을 내려친다. 선체에 붙은 얼음조각은 배를 흔들어 털어낸다. 최첨단 과학기술이 요구되는 고난도 선박 건조다. 아라온호의 항해를 전 씨의 넋이 지켜 주리라 믿는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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