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플랜트사업은 2007년에 40조 원, 그리고 2008년에 50조 원의 수주를 달성했다. 한국이 해외에서 수입하는 에너지 비용의 40∼50%에 이르는 규모다. 해외 플랜트사업은 말 그대로 해외에 공장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플랜트사업을 공장 건설사업이라고 풀어 썼으면 비전문가인 국민이 좀 더 쉽고 빨리 이해할 텐데 고집 센 관계자들이 공장이라는 단어를 선호하지 않아서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게 됐다. 원자력 발전소도 전력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므로 플랜트사업에 포함된다.
해외에서의 영업에는 지연 학연 혈연 중 무엇 하나 통하지 않는다. 오직 실력 하나로 승부해야 한다. 여기서 실력이란 주어진 기한에 최저 비용으로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공장을 건설하는 일이다. 원자력 발전소가 당초 제시했던 전력량을 생산하지 못하면 그만큼 전력요금을 물어줘야 한다. 정유공장의 경우 생산량이 모자라는 만큼의 휘발유값을 물어줘야 한다. 한마디로 고위험 고수익 서비스사업인 셈이다.
플랜트사업의 주체가 독립기업의 모습을 갖추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부분 대형 건설회사의 플랜트사업본부 형태로 존재한다. 해외수주가 가능한 본부는 10개 정도이다. 건설사는 기본적으로 3개의 독립된 사업본부를 포함한다. 도로 교량 항만을 건설하는 토목사업본부, 아파트와 빌딩을 짓는 건축사업본부, 공장을 맡는 플랜트사업본부이다. 3개의 본부는 담당분야가 확연히 구분된다. 플랜트사업본부는 화학공학 혹은 기계공학 전공자가 주류를 이룬다. 따라서 해외 플랜트 수주와 해외 건설 수주라는 용어도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 1970년대에는 해외 수주의 대부분을 토목사업본부나 건축사업본부가 차지했지만 요즘은 80% 이상을 플랜트사업본부가 차지한다.
플랜트사업을 공장 건설사업이라는 용어로 풀어보면 공장소관 부처와 건설소관 부처가 서로 경쟁하지 말고 힘을 합쳐야 업계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해마다 수십조 원을 수주하는 해외 플랜트사업을 전문적으로 밀어주는 전담부서가 아직도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두 부처가 서로 관할권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다.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업계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가동했다면 설계담당 공기업, 조달담당 공기업, 시공담당 민간기업을 활용한 원전건설 실적 보유 주체가 벌써 생겼을 것이다.
해외 플랜트사업 지원정책은 시스템을 통해 마련하고 추진해야 한다. 해외에서 원전건설을 수주하려면 정부 고위인사의 도움이나 금융권의 자금 지원이 필요할 때가 있다. 민간기업의 영업활동만으로는 힘겨울 때가 적지 않다. 이런 일을 도와주는 조직이 있다면 기업에 든든한 힘이 된다. 하나하나의 사안을 보고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묻는 공무원보다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서 도와주는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이재헌 한양대 교수 한국플랜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