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夜間집회

  • 입력 2009년 6월 12일 03시 03분


1989년 4월 28일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발효됐다. 1987년 민주화운동 세력이 주도적으로 마련한 개혁입법이었다. 평화적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되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는 불허하는 것이 핵심이다. 해가 진 이후 옥외집회 금지가 여기 해당된다. 국회법률개폐특위 제3소위 김광일 위원장은 “남은 문제는 민주적 평화적인 집시문화의 정착”이라고 했다. 1990년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도 “6·29선언을 이행하라”는 발언에서 ‘집시법 준수’를 요구했다.

▷그때 법률 심의에 참여했던 한국희 국회 전문위원은 “한 단체가 두 번 이상 폭력적 집회시위를 한 전력이 있다면 사전에 집회시위를 금지할 수 있는 사유에 해당한다”고 했다. 10일 ‘6월 항쟁 계승·민주회복을 위한 범국민대회’라는 야간(夜間) 집회를 주도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진보연대 등은 수없이 폭력적 집회시위를 한 전력이 있는 단골 시위꾼들이다. 민주당은 이들과 함께 ‘서거 정국’을 이어가기 위해 9일 밤부터 서울광장에서 1박 2일 ‘돗자리 정치’를 펼쳤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유서를 써놓고 투쟁에 나섰다는 김충조 의원(민주)은 “5선 의원이 소극적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서울광장에 나갔다”면서도 “민주당이 현재를 22년 전과 똑같은 상황으로 인식해선 안 된다”고 했다. 민주당에서도 “지금은 그때 같은 군사독재정권이 아니고”(김영진 의원), “죽은 대통령을 이용하려 하는 것은 정치도 아니며”(김성순 의원), “국회의원에게 광장은 국회”(박지원 의원)라는 자성의 발언이 이어진다.

▷작년 말 그리스에서 청년 폭동이 벌어졌을 때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아직도 군사정권을 무너뜨렸던 1970년대 혁명정신에 사로잡힌 듯하다”고 꼬집었다. 1973년 대학생들의 민주항쟁으로 이듬해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대학생들은 물론이고 정치세력까지 법에 대한 불복종과 폭력시위를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발상지에서도 정치인이 무능하고 정당이 무기력하면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20년 전 누가 야간 집회를 금지하는 현행 집시법을 만들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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