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송평인]포털의 ‘불공정한 중립’

  • 입력 2009년 6월 15일 02시 59분


해외에서 국내 소식을 접하는 창구는 오늘날 압도적으로 인터넷이다. 프랑스에서도 오랫동안 국내 신문을 구독했던 리옹 3대학 이진명 교수의 회상처럼 보름 전 신문을 뒤늦게 받아보면서도 뉴스에 목말라하던 시대는 말 그대로 왕년이 되고 말았다.

국내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가 한창일 때다. 파리의 한 보수적인 한인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와 같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광우병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됐다. 이 보수적인 기독교 신자는 뜻밖에도 미국 소가 대단히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MBC 방송에 나온 쓰러지는 소는 틀림없이 광우병 소라고 생각했다. 국제수역사무국(OIE) 통계에서 본 대로 소가 쓰러지는 원인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고 광우병은 그중 극히 일부라고 설명해 줬으나 믿으려 하질 않았다. 얘기를 나누면서 그가 주로 인터넷 포털을 통해서 뉴스를 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 한국의 대표적 포털인 네이버는 뉴스캐스트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뉴스를 전달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사태를 겪으면서 포털이 언론도 아닌데 뉴스편집을 할 수 있느냐는 반성에서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의도와는 달리 여론의 지형이 왜곡되는 정도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네이버에 들어가 보면 초기 화면에서 36개 매체의 뉴스가 동일한 시간 간격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각 매체는 뉴스를 직접 편집해 네이버에 제공하며 네이버는 개입하지 않는다. 네이버는 일견 중립적이다. 그러나 네이버가 제공하는 틀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 36개 매체가 수적으로 너무나 많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무엇보다 주요 매체와 군소 매체가 산술적으로 똑같은 36분의 1(약 2.8%)의 취급을 받는다.

가령 최근 등장한 신생 인터넷 매체가 동아 조선 중앙 등 유력 신문이나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 언론의 볼셰비키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현상이다.

이런 틀 속에서 군소매체와 좌파매체는 연합해 대세를 장악하고 기성체제(Establishment)를 향한 공격적 편집을 시도함으로써 뉴스 검색자의 눈에 여론이 왜곡돼 보이도록 만든다. 결과적으로 뉴스캐스트 방식은 동등하지 않은 것을 동등하게 취급함으로써 현실 공간의 여론의 지형을 가상공간에서 왜곡하고 만다.

네이버의 뉴스캐스트 방식은 세계 어느 나라 포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첨단 기법이긴 하다. 그러나 선진 각국의 포털은 사실 위주의 기사를 주로 통신사 등 가치 중립적 매체를 통해 전한다. 그리고 편집은 하되 아주 소극적으로 한다. 견해를 표시하는 기사를 취급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언론의 문턱에 들어서는 것을 피한다. 기자는 유럽 특파원으로 직업상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된 각국의 주요 포털을 매일 검색하지만 한국처럼 포털이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좌우 각 매체의 의견 기사를 그렇게 적나라하게 지시(reference)해 주는 곳을 보지 못했다.

포털은 그 구조상 언론의 핵심인 게이트키핑(gatekeeping) 기능을 갖추거나 잘못된 기사에 대한 반론, 정정, 손해배상 등의 책임을 지기 어려운 곳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포털은 오늘날 어느 매체보다 강력하게 언론의 기능을 사실상 수행하고 있다. 포털 스스로 언론이 되는 것의 막중함을 깨닫고 물러나든가 정부와 국회는 그렇지 않은 포털에 언론과 똑같은 책임을 지워야 한다.

송평인 파리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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