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국세청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이후 200일간 진행된 검찰의 정관계 로비의혹 수사가 12일 막을 내렸다. 내로라하는 검사 19명의 드림팀이 투입된 수사는 각계에 로비자금 135억 원을 뿌린 박 전 회장과 뇌물을 받은 7명을 구속기소하고 14명을 불구속기소하는 선에서 끝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상황이 급반전되면서 수사 동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인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장면은 현재 검찰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배석한 수사기획관과 수사과장들의 얼굴은 시종 굳어 있고 눈을 내리감아 추상같은 위엄보다는 피곤함과 무력감마저 느껴졌다. 수사 결과 자료는 A4 용지 14장이었고 수사 발표는 5분 만에 끝났다. 대형사건의 경우 TV로 전국에 생중계하던 것에 비하면 초라한 모습이다.
국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내용과 처리 방향이었을 것이다. 검찰은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리는 관례와 참고인들의 명예훼손을 이유로 수사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역사적 진실은 수사기록에 남겨 보존될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 가족이 받은 640만 달러는 영원한 비밀이 됐다. 그러면서 검찰은 뇌물 수수자를 불기소 처분할 경우 공여자도 기소하지 않는다고 내사 종결하면서 “박연차의 자백과 관련자들의 진술, 송금·환전자료 등의 증거에 의해 뇌물공여 혐의는 인정된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혐의가 있다는 점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당연히 노 전 대통령 측과 민주당 등은 “고인을 두 번 죽이는 행태”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자유선진당은 “불행한 일이지만 국민의 알권리는 보장돼야 한다”며 “3류 드라마도 이런 식으로 끝나지는 않는다”고 꼬집었다.
검찰의 시련은 이제부터인 것 같다. 야당은 박연차 게이트 특별검사제와 국정조사 도입, 검찰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 의석 분포상 특검제가 통과될 순 없지만 여당이 정국을 풀기 위해 야당과 빅딜을 할 수도 있는 것이 정치인 만큼 안심할 수 없다. 검찰 일각에선 “박연차 자료를 보면 여당보다 야당이 더 죽어날 것이다”라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부정부패 수사에 대한 검찰 수사의 정당성을 더는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중수부 폐지나 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요구는 정치적 의도가 엿보인다. 제도보다는 이를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약도, 독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채진 전 총장이 “중수부를 해체하면 대한민국은 부패공화국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점은 새겨들을 만하다.
이번 수사에서 불거진 피의사실 공표 논란, 별건수사 등 수사관행 개선은 함께 고민해볼 일이다. 후임 검찰총장이 빨리 임명돼 검찰 본연의 자세로 새 출발을 해야 한다. 부정부패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인철 사회부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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