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黨派性이 지배하는 나라

  • 입력 2009년 6월 15일 21시 19분


지난주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이사장 강경식) 초청으로 방한한 ‘미국 차세대 정치지도자 시찰단’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다. 이들 중 공화당 소속인 클라크 졸리 오클라호마주의회 상원의원은 “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많은 정책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딕 체니 전 부통령보다 침묵을 지키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태도가 더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인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공화당원인 부시 전 대통령이 비판을 하게 되면 현직 대통령의 정책 추진에 부담을 주고 미국이 성공할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라고 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1일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강연에서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지 말자. 행동하는 양심으로 들고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4개 야당과 좌파단체들은 경찰이 불법집회로 규정한 ‘6·10 범국민대회’를 서울광장에서 버젓이 열었고, 차로를 점거한 시위대는 “청와대로 가자”고 공공연히 외쳤다. 이 장면을 신문과 TV에서 본 미국 정치인들은 “누가 독재자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 계열의 정치자금모집기관 대표이자 뉴욕지역 케이블방송의 토크쇼 진행자인 대런 리거는 “한국정치에는 당파성(partiality)이 유난히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재임 중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던 전직 대통령이 자살하자 야당이 현직 대통령에게 책임지라며 국회 등원을 거부하는 나라.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는 쓰지 않는 ‘독재자’란 딱지를 현직 대통령에게 붙이는 나라. 미국의 젊은 정치인들이 이런 나라를 이성보다 감성이, 국익보다 당파성이 지배하는 ‘서프라이징 코리아’로 여기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정치집단이나 정치인의 당파성은 어느 면에서 자연스럽다. 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만장일치로 제재를 결의하는 마당에 명색이 전직 대통령에다 제1야당이 “이명박 정권이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남북관계를 파탄내고 있다”며 사실상 북한을 비호하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어떻게든 현 정부를 흔들려는 이들은 안보문제마저도 거대한 정쟁(政爭)의 블랙홀로 밀어 넣고 있다. 그런 전직 대통령에게 ‘월 1500만 원+α’의 국민 세금을 써야 하고, 그런 정당에 3개월마다 26억4845만 원의 국고보조금을 지급한다.

DJ가 자신의 재임 시절 문제를 들춰낼지도 모르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선제적(先制的) 대응으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독재자’ 공세를 펴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도왔던 사람들은 DJ 정권 시절 줄줄이 수사기관에 끌려가 따귀까지 맞으며 뒷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YS가 ‘김대중은 독재자’라고 하는 경험적 이유 중 하나다. 이명박 정부 들어 DJ 주변 사람들이 ‘보복 수사’를 당했다는 얘기는 아직 없다.

전직 대통령 DJ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갈 길을 잃은 야당이나, 170석의 원내 다수의석을 갖고도 당내 당파성에 발목 잡혀 비틀거리는 여당이나 다 부끄러워해야 한다. 오늘의 정치가 당파성의 늪에 빠져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데 대해 대통령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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