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오세정]한국연구재단, 공정성이 생명

  • 입력 2009년 6월 20일 02시 59분


한국과학재단과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이 통합되어 한국연구재단이 26일 창설된다. 한국과학재단과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은 과거 과학기술부 산하기관으로서 이공계 대학의 기초연구와 국제협력을 지원했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은 과거 교육부 산하기관으로 인문사회와 예술 분야를 포함해 모든 학술분야를 지원했다. 두 부처가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합되면서 산하기관도 통합하게 됐다. 세 기관을 합치면 1년 예산만 2조7000억 원(2009년 기준)에 이르는 거대한 연구지원기관이 탄생한다.

일선 연구자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의 반응이다. 학술진흥 정책을 두 부처에서 따로따로 추진할 때는 일관성이 부족했는데 기관 통합으로 문제점이 해소되기를 기대하며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특히 최근 학문 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학제 간 연구가 강조되는 시대인데, 인문사회와 과학기술로 나누었던 연구지원기관을 합침으로써 학문 간 융합적 연구가 잘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반면 연구지원기관이 거대해지면 관료화가 심해져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가 어려워져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연구는 개별 연구자의 창의성에 기반을 두는데 관료화가 심해지면 창의성을 해친다는 우려이다.

기대의 목소리와 우려의 목소리는 모두 일리가 있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중 어느 면이 더 부각되느냐는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점에서 새로 출범하는 한국연구재단은 앞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첫째로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한국연구재단은 한국에서 학술지원을 담당하는 유일무이한 기관이 됐다. 과제의 평가나 프로그램 기획에서 공정성을 의심받는다면 한국 학계에 미치는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학문정책은 국가의 장래를 보며 장기적으로 수립해야 하는데 정치권이나 이해집단의 영향으로 이런 원칙이 깨져 신뢰성이 흔들리면 안 된다. 학문 분야 간의 균형 발전, 연구자 저변 확대를 위한 보편적 지원과 탁월한 연구자에 대한 집중 지원의 조화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둘째로는 창의적 연구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연구관리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을 따라가는 추격형 연구를 벗어나 남들에 앞서 창의적 연구를 수행하는 선도형 연구개발체제로 전환해야 할 시점에 있다. 아직도 우리의 연구지원체제는 추격형 연구를 지원하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연구재단의 출범은 이런 관습을 과감히 떨쳐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창의적 도전적 연구 아이디어를 가진 신진연구자를 발굴하여 지원하고, 성실하게 연구했을 때는 실패도 용인하며, 연구결과 평가에서도 양(量)보다는 질(質)을 중시하는 제도를 과감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

셋째로는 연구만이 아니라 대학 교육에 대한 지원을 강화했으면 한다. 요즘 우리나라 대학은 평가에서의 순위 경쟁 때문에 연구업적을 높이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교수 평가도 연구업적 위주이고, 상(賞)이나 인센티브도 연구 쪽으로 집중된다. 그러나 대학 본연의 임무는 학생 교육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적인 대학이 되려면 연구능력도 좋아야 하지만 학생 교육도 충실히 해야 한다. 그러기에 미국의 국립연구재단(NSF)은 교육 지원을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로 삼고 있다. 한국연구재단도 대학 교육의 내실화를 위한 정책을 다각도로 펴기 바란다.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적 성장만이 아니라 문화와 학술을 통해 국격(國格)을 갖춰야 한다. 한국연구재단이 그 일에 큰 기여를 하기 바란다.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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