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용우]2년에 한 번 ‘30분 파업’…獨보쉬의 노사관계

  • 입력 2009년 6월 23일 02시 58분


세계적으로 사업장 300여 개, 임직원 수 28만3000여 명. 지난해 매출 451억 유로(약 79조3000여억 원). 올해로 설립 123년을 맞은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회사 독일의 보쉬그룹의 현황이다. 최근 이 회사의 핵심 사업장인 독일 슈투트가르트 근처 포이어바흐 디젤 공장을 찾은 기자는 화려한 외형 보다 수십 년간 이어지고 있는 노사 간 깊은 신뢰 관계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이 회사는 아직까지 비공개 기업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동안 노사 불신에서 비롯된 심각한 갈등 사례를 찾기 힘들다. 공장에서 만난 르네 렌더 마케팅 담당 부사장은 “20년 넘게 보쉬에서 일하고 있지만 ‘진정한(real)’ 파업을 한 번도 못해 봤다”고 했다. 그가 ‘진정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 회사에서도 2년에 한 번 정도 ‘파업’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파업은 근로자들이 30분 정도 일손을 놓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게 전부다. 노조와 근로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회사에 알리기 위해 상징적인 의미에서 파업을 할 뿐이었다. 그는 “어떤 문제에 대해 노사가 서로 다른 해결책을 생각할 수 있지만 늘 대화를 통해 함께 해답을 찾는다”고 했다. 이런 노사 간 관계를 바탕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보쉬는 지난해에도 고용과 연구개발 투자를 크게 늘렸다.

“직원들의 국내외 공장 간 이동에 회사가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까.” 기자의 질문에 렌더 부사장은 한동안 질문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라인 간 인력 재배치는 물론 공장 간 물량 조정을 하는 것도 일일이 노조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한국 자동차기업의 현실을 미리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참 후에야 그는 “여기선 공장 간 이동에 대해 근로자들이 좋은 교육 기회로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보쉬는 어떻게 이런 ‘꿈같은’ 노사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을까. 여기엔 주5일 근무와 하루 8시간 근무를 가장 먼저 시행한 보쉬 설립자의 직원을 소중히 여기는 철학이 바탕이 됐다. 근로자들은 회사의 장기적인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고 회사의 혁신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고 했다. 보쉬 임원들과 이런 대화가 오가는 동안 기자의 휴대전화에는 한국에서 보낸 문자메시지가 연이어 들어왔다. ‘쌍용자동차 법정관리인 살인죄로 고발’ ‘직원 사망에 대한 회사 측 입장’ ‘현대자동차 노조 집행부 사퇴’…. 아직 한국 자동차 기업에 보쉬의 노사 관계는 그저 꿈인 걸까.

―슈투트가르트에서

조용우 산업부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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