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과정에서 한계기업의 잇단 출현으로 기업 구조조정 문제가 부각되자 채권금융기관은 기업구조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 기업구조조정협약을 만들었다. 이를 근간으로 채무 조정, 대출금 출자전환을 통해 기업 회생을 지원하는 한국식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회생에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이 대우그룹 계열 12개사였다. 기업구조조정기구의 기금을 활용해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했으나 대우 계열사를 끝으로 기업 구조조정은 사실상 일단락된다.
기업 구조조정은 해당 기업의 소유주와 채권자, 종업원 등 이해관계자 모두의 희생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견디기 힘든 고통에도 수술을 미루지 말아야 할 이유는 위기 이후를 대비한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다. 당시에는 구조조정에 장애요인이 적지 않았다. 국내 자본시장의 미발달, 부실 채권시장 및 투자은행 등 부실채권 수요처의 부재, 선진금융기술 및 전문인력 부족이 대표적이다.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은 외환위기 극복 경험을 통한 체질 강화와 대외 경제여건 호전에 힘입어 비교적 건실하게 성장했지만 지난해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부문으로 전이되면서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의 안정과 경기 부양을 위한 각종 대책을 쏟아 내는 가운데 다행스럽게도 정부의 선제적 대응 정책에 따라 주가, 환율 등 경기 지표가 호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 상황이 근본적으로 개선된 것은 아니다. 실물경제의 본격 회복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영국의 대규모 재정적자 우려, 미국의 실업률 증가 및 가계 부실 심화, 주요 선진국과 신흥시장의 경기 침체 등 암초가 곳곳에 있다. 유럽 주요 대형 은행의 위험자산 규모가 자기자본을 초과해 글로벌 금융시장의 또 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소지가 큰 점 또한 걱정거리다.
우리나라 역시 부실채권이 대폭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경기 회복이 늦어질 경우 부실이 현실화될 개연성이 높은 이른바 ‘좀비기업’ 증가로 이어져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중요한 점은 미래의 불안요인을 사전에 제거하는 노력이다. 이미 발생한 부실채권의 처리뿐 아니라 향후 부실 가능성이 큰 기업을 중심으로 기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1년이 우리 금융시장 및 경제 전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환기이다. 철저한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강화 노력 없이는 경기가 반짝 회복되더라도 경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은 불가능하다. 캠코와 산업은행 등 금융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또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선진화된 금융 인프라와 축적된 노하우, 전문인력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잠재적 부실에 철저히 대응하고 선제적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구조조정은 방식 못지않게 타이밍이 중요하다. 10여 년 전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철저한 기업 구조조정을 완수하지 못한 데 대한 후회를 되풀이하지 않기 바란다.
박상무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전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