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공병호]‘중도 강화론’은 잘못된 처방

  • 입력 2009년 6월 27일 03시 00분


살아가는 일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어떻게 하면 뛰어난 문제 해결사가 될 수 있을까? 대다수 사람이 일상과 직업 세계에서 고민하는 일이다. 이런 면에서 이명박 대통령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출범 초기 엄청나게 쌓였던 정치적 자산은 소진되어 버렸고, 이제는 지지세력조차 등을 돌리는 실정이다. 초기의 실책을 만회하고 다시 인기를 회복하기 위해 모종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 이 대통령만큼 고심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좌파 ‘낙인찍기’ 공세에 두손 들어

“중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느닷없는 발언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가 있다. 그 발언에 대해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일이 예외가 아니면 그냥 ‘그런 이야기가 있었구나’라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의 발언은 남은 임기 동안 국정 운영의 향방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 같은 예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본다.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좌우 진보 보수라는 이념적 구분을 하는 것 아니냐. 사회적 통합이라는 것은 구호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돼야 한다.”

모든 문제 해결에는 원인에 대한 정확한 처방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잘못된 처방은 잘못된 대책을 낳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국정운영의 근본적인 원인은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대결에 있지 않다. 더욱 근원적인 원인은 이 대통령 자신의 리더십 위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원인을 찾으면 스스로 고쳐야 할 부분은 없다. ‘당신들 때문이야’라고 이야기하고 나면 그뿐이지만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는다. 오히려 잘못된 대책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대통령의 자리는 지존(至尊)의 자리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 가운데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 정확하게 지적하는 사람이 존재할 가능성은 아주 낮다. 특히 이런 직언은 자리를 걸 정도로 용기를 갖지 않는 한 이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사람의 본성으로 미루어 보면 일단 측근이 되고 나면 누구든 어떻게든 자리를 보전하는 일이 일차적인 목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권력을 쥔 사람 주변에는 항상 인의 장벽이 쳐지게 마련이고 시중에 보통 사람도 모두 다 아는 너무 단순한 진실마저 최고 권력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 지금이 이런 상황에 가깝다고 본다.

먼저 원칙 지키는 모습 보여줘야

왜 중도 강화론에 문제가 있는가? 역사적으로 좌파의 특기 가운데 하나는 공격 대상을 극우로 몰아붙여 강한 낙인을 찍어대는 일이다. 이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우파적인 색채가 강한 정책이 무엇이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별반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극우적인 색채의 정책은 더더욱 없었다. 그러나 수세에 몰린 좌파의 낙인찍기 선전공세에 이 대통령 스스로 ‘나는 극우가 아냐, 난 중도야’라는 그런 억울함과 아울러 바깥에서 손쉽게 원인을 찾으려는 의도가 맞아떨어져서 이번 발언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누구든지 자기 자신에게 실책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부분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일은 유쾌한 경험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잘못된 처방에서 나온 중도 강화론과 같은 정책의 추진은 이미 상당 부분 이뤄진 지지층의 이반에 더욱 힘을 더할 위험이 있다. 동시에 오랫동안 이 대통령을 비판해 왔던 세력에 ‘그 봐, 조금만 밀어붙여도 손을 들지 않아’ 혹은 ‘계속해서 몰아붙여’라는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지향해야 할 최고의 상태는 존경받는 일이며, 동시에 어렵게 여겨지는 모습이다. 그것이 쉽지 않다면 최소한 녹록하게 보이지는 않아야 한다. 그도 아니라면 우습게 여겨지는 상황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 그럼 왜, 이상적인 상태에서 멀어져 버렸다고 생각하는가? 그 원인은 ‘한 번이라도 내뱉은 말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위법적인 활동에 대해 원칙을 준수하고 이를 지켜나가는 일에는 좌와 우 같은 용어가 필요하지 않다. 올바름은 올바름이고 그름은 그름이다. 원칙을 지속적으로 우직하게 지켜나가는 용기를 보일 때 존경심과 신뢰감이 생겨난다. 신중하게 고려한 다음에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일이 있으면 어떤 경우라도 물러나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그런 일에서 얼마나 많은 실책이 있었던가. 어설픈 정책을 내놓았다가 조금이라도 반대가 있으면 ‘그런 일은 없었다’는 식이 반복됐다. 또한 정책의 적절한 타이밍에 정확한 판단력을 행사하지 못함으로써 대통령에 대한 믿음과 신뢰, 그리고 권위가 추락한 것이 사실이다.

일부 목소리 높은 집단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이 보이면 더더욱 국정 운영의 혼란을 더하는 일이 된다. 이는 이 대통령이 점점 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길로 달려가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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