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고인돌과 난생설화의 관계
1965년 발굴한 충북 제천 황석리 13호 고인돌에서 사람의 뼈가 나왔다. 기원전 410년 전후에 묻힌 키 170cm의 40대 남자였다. 이 ‘황석리인’의 두개골은 앞뒤로 긴, 서양인에 가까웠다. 왜 고인돌의 주인공이 서양인에 가까울까. 한양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이 의문을 바탕으로 한반도 문명의 여명기에 나타나는 고인돌의 미스터리를 파헤친다.
한국에 남아 있는 고인돌은 3만 개. 그중 90% 이상이 전라도에 있다. 세계에서 발견한 고인돌을 모두 합쳐도 한반도의 고인돌 수에 못 미치니 한국은 고인돌의 왕국이다. 고인돌은 일본에선 규슈와 오키나와에서만 발견됐고 인도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 남아시아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됐다. 이 지역은 묘하게도 난생설화, 즉 신라의 박혁거세나 김알지처럼 시조가 알에서 나왔다는 설화 지역과 거의 중첩한다.
저자는 한국의 고인돌 문화가 멀리 유럽에서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다는 고인돌의 남방유래설을 처음 내놨다. 고인돌이 남방에서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적도에서 출발해서 대한해협을 통과하는 구로시오 해류 덕분이라는 것이다. 인도 마드라스(현 첸나이) 지역에서 쌀 밥 벼 등 쌀농사와 관계된 용어의 발음이 우리와 똑같으며, 인도네시아 발리 섬에서 제주도의 돌하르방과 같은 석상이 발견되는 것처럼 한반도에 남방 문화 요소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들 남방계 사람이 벼농사를 포함한 남방 문화를 갖고 한반도에 들어와 살고 있다가 북방에서 이민 온 기마민족들에 의해 점령된 뒤 동화돼 갔다는 결론이다.
저자는 인도 인도네시아 발리 오키나와 등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모았다. 이런 노력은 저자가 ‘신어(神魚)’를 추적한 데서도 드러난다. 경남 김해시의 배후산은 신어산. 이 산의 절에 있는 동림사와 은하사엔 물고기가 그려져 있고 수로왕릉에도 물고기 두 마리가 인도식 탑인 스투파를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있다. 저자는 이 의문을 탐구하면서 가야의 김수로와 결혼한 인도 아유타국의 허 왕후를 추적한다. 1985년 인도 아요디아(아유타국은 아요디아의 한자식 음차)를 찾았더니 이곳 힌두교 사원의 대문에 신어상이 빠짐없이 새겨져 있고 자동차 번호판과 경찰 제복의 단추에도 신어상이 보였다. 대홍수 때 몇 사람만이 물고기의 도움으로 살아남았고 그중 하나의 후손이 아요디아를 세웠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이 신어 여행은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로, 중국 푸저우(普州·현재 쓰촨 성 안웨 현)와 일본 구마모토까지 이어지면서 바빌로니아에서 한국 가야까지 이어지는 신어 신앙의 루트를 밝혀낸다.
이 책은 30년간 유라시아 대륙을 탐사하며 틈틈이 써놓은 수첩 수백 권의 메모를 바탕으로 쓴 노작이다. 저자는 우리의 언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알타이 문화 탐색을 위해 몽골 시베리아 우크라이나를 돌아다녔다. 인류 문명을 보여주기 위한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 유럽 거석(巨石) 문화를 대표하는 영국 스톤헨지, 이집트 피라미드도 찾았다. 고고학 책을 넘어 여행기의 재미도 담고 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