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회 좌담]주제: 독자 알 권리와 피의자 인권 보호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7월 4일 02시 52분



국민 알 권리, 피의자 인격권과 조화 이뤄야
《동아일보사 독자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독자의 알 권리와 피의자의 인권 보호’라는 주제로 토론했다. 정성진(전 법무부 장관) 위원장, 이민웅(한양대 명예교수) 윤영철(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 위원과 동아일보사 최영훈(편집국) 김동철(출판국) 박태서(동아닷컴) 스탠더드에디터가 참석했다.
사회=박명식 동아일보 미디어연구소장》
언론자유 지위 인정해야 기본권 침해도 막아
정서적 휩쓸림 넘어 이성적인 여론형성 중요

―노무현 전 대통령 및 측근 비리 수사 과정 보도에서 ‘독자의 알 권리와 피의자의 인권 보호’ 문제가 대두됐습니다. 상충될 수밖에 없는 두 가치가 어떻게 하면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최영훈 스탠더드에디터=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피의 사실 공표라는 해묵은 과제를 우리 사회에 제기했습니다. 검찰의 수사 브리핑, 언론의 취재 방법의 새로운 룰을 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법무부에 ‘수사공보제도개선위원회’가 구성됐습니다. 여기에서 수사 브리핑의 기준, 수사 상황 유출, 초상권 보호, 오보 또는 추측성 보도 문제 등을 논의할 것으로 봅니다.
이민웅 위원=피의 사실 공표와 관련해 언론의 시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공표된 피의 사실의 객관성 정확성입니다. 그게 결여되면 명예권 인격권을 침해하게 됩니다.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도 피해를 볼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윤영철 위원=이번 사건은 매체별로 각기 다른 시각에서 보도했습니다. 또 비리 수사와 서거라는 사건이 연이어 이뤄졌습니다. 같은 언론사에서도 두 사건을 보도하는 시각에 차이가 났습니다. 독자들은 어쩌면 당혹스럽고 어리둥절할 수도 있습니다. 보수 매체든 진보 매체든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정성진 위원장=언론이 검찰 발표 내용을 그대로 기사화한 것이 옳은가, 별도의 검증 노력을 충분히 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수사 상황을 브리핑하는 것은 언론과 수사기관의 편의를 위한 암묵적 관행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아울러 동아일보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논의해 보는 자리가 됐으면 합니다.
이 위원=국민의 알 권리와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두 기본권이 충돌하는 상황인데 수사공보제도개선위도 이걸 조화롭게 조정할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겁니다. 사법적 안정성을 위해 국가 차원의 기준도 필요하지만 동아일보도 기본권 충돌 사태가 벌어졌을 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자체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윤 위원=대통령은 비중 있고 영향력이 큰 공인이기 때문에 국민의 알 권리를 우선시해야 합니다. 알 권리와 관련해 대통령 등 정치인과 재계 지도자 등의 불법이나 비리 관련 보도 기준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분모도 있을 겁니다. 또 연쇄 살인범이나 연쇄 성폭행범과 일반 범죄자에 대한 보도 기준도 서로 달라야 합니다. 이런 다양한 사례를 유형별로 나누어 대응하다 보면 차별화된 준칙이 나올 겁니다.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이번 사건 보도에서 동아일보는 특종을 많이 했습니다. 특종으로 확인된 사실을 근거로 새로운 사실을 보도하는 등 다른 언론사보다 앞서 나갔습니다. 이것은 검찰 발표 내용의 기사화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발로 뛰어 취재하고 보도한 겁니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검찰이 흘려 줬다고 하니 상당히 억울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 위원=알 권리와 피의자 인권 보호라는 두 가지 법익이 부닥친다면 언론자유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인격권이나 기본권이 침해받는 사실조차도 국민에게 알리고 공론에 부칠 수 없게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과잉 보도라고 하는데 대통령은 공인 중의 공인입니다. 평생 공인입니다. 그런 사람의 뇌물 수수 의혹 사건이 터졌는데 그걸 아침저녁으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봅니다. 국민적 관심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이 서울로 검찰에 출두할 때 헬리콥터를 띄우는 등 중계방송 하듯이 한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기자단 내에서라도 조정했어야 합니다.
윤 위원=그런 부분이 우리나라 문화뿐만 아니라 저널리즘 문화의 한 단면인 듯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이성적 합리적 사고의 토론보다 정서적 휩쓸림이 많습니다. 국민이, 사회 자체가 그렇다 보니 그게 언론에 반영된다고 봅니다. 서거 이전 수사 보도를 보고 많은 국민이 분노했죠. 그러자 소위 진보 언론까지도 비리 관련 보도를 많이 했습니다. 서거 이후 정서적 감정적 분위기가 형성되니까 동아 조선 중앙도 추모 분위기를 지면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널리즘이나 건전한 여론 형성, 민주주의 발전의 차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소 무미건조해 보일 수는 있지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냉철하고 차분한 토론과 팩트 차원의 문제를 가지고 보도해야 합니다. 권위지가 되려면 정서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뭔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줘야 합니다.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인터넷 신문은 실시간 속보 경쟁을 하기 때문에 팩트의 검증에 다소 취약합니다. 다른 매체의 단독 보도 내용이라도 바로 받아서 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겨를이 없습니다. 만약 그 보도가 사실이 아니면, 엄밀히 말해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통신사 또는 방송사의 뉴스를 보도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때문에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인터넷 신문의 딜레마입니다.
―우리나라의 수사 보도를 보면 수사 과정은 경쟁적으로 보도하지만 재판 단계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습니다.
정 위원장=선진국 수사기관은 수사 과정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각 단계만 공표합니다. 입건, 구속, 기소 같은 사실만 발표하는 거죠. 그 다음 단계인 재판 과정은 모두 공개합니다. 수사는 당사자의 명예를 보호하고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보안을 유지하는 게 원칙입니다. 오늘은 누구를 불러 수사했고, 어떤 게 드러났다는 식으로 수사 과정을 낱낱이 공개하는 건 우리나라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수사 당국은 “국민이 그걸 원하고, 그에 따라 언론이 집요하게 요구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이제는 이 관행을 고쳐 나가야 합니다. 외국 신문과 비교하면 수사 진행 상황을 보도하는 기사에서 ‘검찰이…, 경찰이…’라는 형식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명예훼손, 인격권 사생활 침해뿐만 아니라 수사 관계자의 불필요한 경쟁심 공명심까지 일으키는 부작용도 생깁니다.
최 스탠더드에디터=피의 사실 공표는 엄밀히 말해 언론과는 무관합니다. 피의자의 인권 보호만 이야기하는데 실은 수사 보안을 위한 측면이 공존합니다. 수사 브리핑 제도를 개선해야겠지만 하루아침에 없앨 수는 없을 테니 이상과 현실을 잘 절충해야 할 겁니다.
이 위원=노 전 대통령 및 측근 비리 보도와 관련해 그동안 우호적이던 한겨레, 경향, MBC 같은 매체들이 ‘도덕성 무너져’, ‘철저하게 수사해서 가려야’ 하는 식으로 보도했습니다. 실제 MBC는 허드슨 강변의 주택 내부를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보다 우호적이던 사람이 험악하게 비판하면 더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 전 대통령은 검찰과 수구 언론이 죽였다’라는 식의 주장은 상식에 어긋난다고 봅니다. 편 가르기를 오래 해 양쪽의 상식이 너무 달라졌습니다. 동아일보가 한국 사람이면 같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상식적인 공통분모를 형성하는 데도 신경 썼으면 합니다.
정 위원장=국민의 알 권리도 보도되는 당사자의 인격권과 조화되어야 합니다. 알 권리는 무한정 허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 싶은 모든 사안에 대한 권리가 아니고 알 필요가 있는,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에 대한 권리여야 합니다. 알 권리, 피의 사실 공표, 보도의 균형, 공중의 관심 등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무엇이 공공의 이익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또 명예훼손을 하지 않으려면 절제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정리=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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