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간담회보다 토론회를 즐겼다. 그가 해양수산부 장관일 때 부산 시민단체들이 해양부의 부산 이전에 관한 간담회를 요청했다. 간담회의 장단점과 언론의 생리를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었던 그는 간담회 대신 TV 토론회를 하자고 역(逆)제의했다. 그는 “간담회를 할 경우 내 이야기는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해양부 이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장관을 불러서 이전을 촉구했다는 사실만 보도될 우려가 있었다”고 나중에 털어놨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라는 말로 유명한 ‘신(新)경영 선언’을 발표했다. 이 회장은 8월 4일까지 영국과 일본을 오가며 삼성그룹 사장단과 임직원을 대상으로 ‘해외 간담회’를 계속했다. ‘신경영 대장정’으로 불리는 이 기간에 간담회는 사장단을 대상으로 800시간, 임직원 1800명을 대상으로 350시간이나 열렸다.
▷그제 제주 서귀포에서 열린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대학 총장 165명의 간담회는 장관의 일방통행식 강의였다는 후문이다. 이 간담회는 안 장관이 “또 말씀드릴 게 있다”는 말을 반복하며 연설을 계속해 예정된 1시간이 다 지나가고 서울로 돌아갈 비행기 시간도 임박해지는 바람에 서둘러 총장 3명의 질문만 받고 끝났다. “장관이 쓴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혼자 얘기만 하는 게 무슨 간담회냐”는 뒷말이 나왔다. 안 장관이 국공립대 지원 확대 등을 밝힌 대목에서는 박수가 나오며 분위기가 괜찮았다고 한다. 상대의 얘기를 경청하지 않고서 진정한 대화나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다. 대학 총장 165명이 결국 ‘장관 특강’을 듣기 위해 제주도에 집합한 모양새가 됐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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