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 들어 작년 6월 초∼올해 2월 초 8개월간 의원들은 전체 35건, 연인원 114명이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경비 분석 결과 의원들이 해외를 돌며 뿌린 격려금 총액이 7500만 원이었다. 선물비를 빼고도 의원 한 사람당 70만 원을 격려금으로 썼으니 적은 돈이 아니다. 그런데 이 격려금은 의원의 개인 지갑에서 나온 게 아니라 국민 세금이었다. 그것도 영수증 없이 ‘○○○에게 격려금 지급’이라고 써낸 게 전부다. 의원은 외교 공무원을 공항 영접이나 심지어 쇼핑 도우미로 부려먹고 국민 세금으로 촌지를 주었다. 외교관은 국회와 정부가 공인(公認)한 아르바이트를 한 셈이다.
▷세금을 쓰는 비용 지출이라면 억 단위는 물론이고 수백만, 수천만 원도 가볍게 써서는 안 된다. 국회의원이 정당하게 외교관의 도움을 받았으면 격려금을 줄 필요가 없다. 공무가 아니라 심부름에 가까운 일을 시켜 놓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려금을 주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의원의 해외 업무추진비 명세를 정보공개 청구하자 국회는 넉 달 만에야 그나마 구체적인 사용처는 밝히지 않은 자료를 내줬다. 많든 적든 국민 세금을 의원들이 어디서 어떻게 쓰는지를 모두 공개하고 잘못 쓴 돈은 회수해야 옳다.
▷영국은 지난달 하원의원 646명이 4년간 청구한 수당과 경비 명세 120만 쪽을 의회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했다. 의원 수십 명이 주방용품 구입, 연못 청소 등에 세금을 쓴 ‘세비(歲費)스캔들’이 폭로되자 과거의 행적을 모두 공개한 것이다. 이 스캔들로 영국 역사상 314년 만에 처음으로 하원의장이 중도 사퇴하고 장관과 의원 10여 명이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거나 보직을 사퇴했다. 수십 명이 청구한 10억 원이 영국 정치를 뒤흔들었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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