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유가가 내리면서 불과 몇 달 만에 정부의 관심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형마트들은 막 출범한 정부가 낸 ‘숙제’에 열심히 매달렸다. 새로 들어선 정부이니 예쁘게 보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가장 발 빨랐던 곳은 이마트였다. 이마트는 지난해 12월 경기 용인시 구성점과 경남 통영시 통영점에 주유소를 냈다. 올 들어서는 롯데마트 경북 구미점(5월)과 이마트 경북 포항점(6월)이 들어섰다.
‘마트표 주유소’는 예상보다 위력적이었다. 통영시에 따르면 시내 36개 주유소 중 이마트 통영점 주유소의 매출 비중은 31%(4월 기준)에 달했다. 롯데마트 구미점 주유소도 인근 주유소의 10배 이상인 하루 평균 1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16일 현재 이 점포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L당 1565원으로 구미 지역 최저가다.
기존 주유소들은 대형마트 주유소를 ‘공공의 적’으로 삼았다. 표심에 약한 지자체들이 주유소를 운영하는 지역 ‘유지’들의 원성을 무시하기 힘들었기 때문일까. 4월 전남 순천시는 이마트 순천점 주유소의 건축허가를 반려했다.
5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 시행령 개정으로 주유소 등록업무가 기초자치단체로 이양된 것도 대형마트엔 불똥이었다. 최근 통영시와 울산 남구도 ‘주유소 등록요건에 관한 고시’를 통해 ‘주유소는 대형마트로부터 25∼50m 이상 떨어져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두 곳에 주유소를 내려고 준비하던 롯데마트는 지자체의 ‘사실상 불허’에 당황해하고 있다.
대형마트들은 정부의 요청으로 괜히 주유소 사업을 시작했다가 정부와 지자체 간의 엇박자에 휘둘리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지자체뿐 아니다.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쳐왔다. 그러다 최근에는 민심을 잡겠다며 갑자기 ‘서민 프렌들리’를 외치며 자영업자 보호에 나섰다.
정부의 속내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번 주유소 허가 문제처럼 정부의 ‘갈대’ 같은 태도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일관성이 결여된 정책은 내용이 아무리 좋더라도 결국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국민과 기업은 믿음이 가는 정부를 보고 싶다.
김선미 산업부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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