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곽상수]첨단 잠수함에 옻칠하는 이유

  • 입력 2009년 7월 23일 03시 16분


장마철이 되면 많은 습기로 생활에서 불편을 느끼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구 등 나무제품은 습기로 인해 뒤틀리거나 곰팡이가 생겨 상품가치가 떨어지고 기분을 불쾌하게 한다. 그러나 옻칠(漆)을 한 목제품은 습기뿐만 아니라 곰팡이와 벌레에도 안전하다. 일본에서는 높은 습도에 견디기 위해 옻칠제품이 발달했다. 영어사전에서 일반명사 japan을 옻칠 또는 칠기(漆器)로 설명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서구인 눈에 비친 일본(Japan)은 화려한 옻칠문화가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옻칠은 한국 중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이 오래전부터 천연 도료로 사용했다. 중국에서 약 7000년 전에 옻칠을 한 목제그릇이 부식되지 않은 상태로 발굴됐다. 인체에 무해한 천연도료로 아름답고 수명이 길어 주방용 목제 생활용품에서 전통악기, 팔만대장경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용됐다. 팔만대장경은 각각의 판에 옻칠을 하여 습기로 인한 변형을 방지했다. 또 옻칠은 공기와 습기로부터 전통악기를 보호함으로써 웬만한 외부 환경조건에도 악기의 음색이 변하지 않고 늘 일정하게 해준다. 무령왕릉의 목제 유품을 비롯한 전통문화재도 옻칠 덕분에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한다. 옻칠이 돼 있지 않았다면 산화작용으로 부식되고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한 줌의 흙으로 변했을 것이다.

옻칠은 수분과 관련하여 특이한 점이 많다. 적정한 습기가 없으면 마르지 않으며, 건조된 후에도 습기를 지녀 스스로 습도를 조절한다. 흡착력도 강하여 칠이 나무에 스며들어 벗겨지지 않는다. 실내에 옻칠제품이 있으면 방이 건조할 때 습기를 내뿜고 습할 때는 습기를 빨아들여 습도를 조절해 주는 역할도 한다.

옻칠이 높은 방습효과, 살균력, 살충력 등 화학적 내구성을 가진 이유는 옻칠의 원료인 옻나무 수액에 고농도(약 60%)로 함유된 우루시올 성분으로 설명되지만, 옻칠만큼 성능이 우수한 인공 페인트는 아직 개발되지 못했다. 옻칠이 지닌 신비를 과학적으로 밝히면 합성 페인트로 인한 새집증후군을 막을 웰빙 합성도료를 개발할 수 있다. 필자의 연구팀은 옻나무 수액에서 높은 미생물 생장저해활성, 항산화활성 및 암세포 생장저해활성을 가진 원인물질이 우루시올임을 처음으로 확인한 바 있다.

우루시올은 옻을 오르게 하는 알레르기 유도물질이기도 하다. 옻나무에 상처를 줬을 때 분비되는 수액은 상처를 받은 부위를 스스로 치유한다. 우루시올은 옻나무 상처부위에서 생성되는 많은 활성산소로 인한 산화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생체방어물질(항산화물질)인 셈이다. 항산화물질은 노화와 질병의 원인인 활성(유해)산소를 제거하는 물질이다. 우루시올은 대표적인 천연 항산화물질인 비타민E(토코페롤)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지용성 화합물이다.

옻나무는 피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다. 옻나무 부근을 지나거나 옻나무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몸이 가려운 사람이 있다. 옻칠을 사용하는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만 옻나무를 건강식품 소재로 애용한다. 알레르기 유발식물인 옻나무를 천연도료뿐만 아니라 보양식품으로 애용하여 온 조상의 과감하고도 지혜로운 과학적인 정신이 존경스럽다. 우리 조상은 대청마루, 장판, 벽지 등에 온통 옻칠을 하여 습기도 조절하면서 친환경적인 웰빙생활을 했다. 최근 옻칠은 고급 승용차, 해저 광케이블, 잠수함에서 최고급 기능성 도료로 사용된다. 옻칠의 우수성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옻칠문화를 다시 꽃피우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환경바이오연구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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