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칼럼]미디어 융합으로 신문산업 살리기

  • 입력 2009년 7월 27일 02시 57분


무선전신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등 새 매체가 출현할 때마다 종이신문의 위기론이 무성했다. 이 위기를 딛고 신문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무선전신이 신문보다 먼저 죽었고, 라디오는 음악방송 교통방송으로 명맥을 이어간다. 미국의 저명한 여성 정치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였던 몰리 어빈스는 1964년 신문사에 입사했을 때부터 “신문은 죽어가는 산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1월 유방암으로 신문보다 먼저 죽었다.

그렇지만 지금 신문이 맞고 있는 위기는 신문이 생긴 이래 가장 심각하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15년 동안 영업이익이 25% 감소했고, 뉴욕타임스는 50% 감소했다. 영국에서는 70개 지방신문이 문을 닫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종이신문 대신에 ‘데일리 미(Daily Me·일간 나)’를 즐겨 읽는다. 데일리 미는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교수가 젊은이들이 뉴스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스스로 인터넷신문을 편집해 본다는 의미로 쓴 조어(造語)이다. 종이신문과 온라인판(版) 독자를 합하면 전체 독자 수는 늘어났지만 온라인 독자는 신문사의 수익 증대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선진국의 싱크탱크들은 제4부의 붕괴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한다. 세상일을 잘 꿰고 있는 시민은 민주주의의 기반이고 신문은 이런 시민을 양성하는 기능을 한다. 비판적 인식능력이 부족한 젊은이들이 ‘데일리 미’만 볼 경우 부정확한 정보와 편견에 사로잡힐 위험성이 크다. 구글의 에릭 슈밋 회장은 “인터넷은 그릇된 정보의 폐수 웅덩이”라고 말했다.

신문의 위기는 민주주의 위기

미국 상원은 청문회를 열어 ‘멸종(滅種) 위기에 처한 신문’(존 케리 위원장의 모두 발언) 을 살리는 방안을 논의했다. 평소 신문의 감시를 받는 정치인들이지만 신문을 살리자며 팔을 걷어붙였다. 벤저민 카딘 상원의원은 광고수입과 구독료수입에 대한 세금 면제, 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를 내용으로 하는 신문회생법안을 발의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언론지원계획은 만 18세 젊은이에게 1년간 원하는 신문의 무료구독권을 주고, 정부 신문광고를 두 배로 늘리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신문은 공론장을 형성하는 민주주의의 한 축이자 인터넷 시대에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성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신문이 정상적인 기업으로서는 생존하기 어려우니 대학처럼 비영리 기관화해 정부 보조금을 주자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신문이 정부 보조금에 기댈 경우 보도와 논평의 독립성이 훼손되기 쉽다. 자선가의 기부만 받아서는 지금처럼 다양한 보도와 논평으로 채운 지면을 제작할 수 없다.

미디어법을 둘러싼 논란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메이저 신문의 여론 독과점만 따지느라 미디어를 산업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데 소홀했다. 디지털 시대로 진입하면서 라디오 지상파TV 케이블TV 신문을 구분하던 낡은 장벽은 쓸모가 없어졌다.

뉴스 콘텐츠를 종이신문에만 싣는 방식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디어 그룹은 뉴스 콘텐츠를 신문 방송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과 심지어 휴대전화에도 공급하는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 use)로 경영의 효율성을 높인다. 기자들은 종이신문에 기사도 쓰고,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인터넷에 동영상을 띄우는 멀티미디어 리포팅에 적응해야만 미디어 융합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광고주들도 원스톱 쇼핑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와 충성도를 높이게 된다.

선진국들은 미디어 그룹이 다양한 매체를 함께 경영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가는 추세다. 디즈니는 신문 방송 영화사를 거느린 거대 미디어그룹이다. 호주 출신 언론 재벌인 루퍼트 머독의 뉴스 코퍼레이션은 미국 폭스TV를 비롯한 텔레비전 방송국 35개, 월스트리트 저널을 비롯한 신문 30개, 케이블 방송국 17개를 보유하고 있다.

매체 간 칸막이는 낡은 유산

새 미디어법으로 방송의 진입장벽이 낮아져 방송사가 많이 생기면 방송시장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레드 오션으로 바뀐다. 2012년 디지털TV 방송이 시작되면 채널을 5∼10개쯤 더 만들어낼 수 있다. 케이블TV 종합편성 채널도 지상파의 80%가량 시청자를 확보하게 된다. KT, SKT, LGT가 시작한 인터넷TV(IPTV)는 회사당 990개 채널을 갖는다. 일종의 채널의 포털이다.

신문 방송의 겸영에 따른 여론 다양성의 훼손은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多)매체 다채널 시대에는 한 개 언론사가 갖는 정치적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신문이 방송을 갖는다고 생존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더 뜨거운 경쟁에 휘말려들게 된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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