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육식성 좌파’

아득한 옛날 지구를 지배한 공룡은 초식성, 육식성, 잡식성 공룡으로 나뉜다. 육식성 공룡은 몸길이가 보통 6∼15m였고, 초식성 공룡은 이보다 훨씬 커 세이스모사우루스는 50m나 됐다. 그러나 몸집이 크지만 행동이 둔한 초식 공룡은 빨리 달리고 이빨이 날카로운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육식 공룡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대선 압승과 총선 낙승에도 불구하고 대선불복세력의 공세에 쩔쩔매곤 했던 이명박 정권의 행태를 ‘초식성 우파’와 ‘육식성 좌파’의 차이로 보는 견해도 있다.

▷육식성 좌파는 대체로 사실이나 진실에 대한 책임의식이 약하다. 광우병 선동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장, 왜곡, 조작도 서슴지 않는다. 나중에 잘못이 드러나도 이런저런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고 진지한 자성(自省)과 재발방지 노력을 않는다. 자신들의 목표에 걸림돌이 되는 집단이나 개인이라면 근거가 약하더라도 집요하게 물어뜯어 흠집을 내려 한다. 지난해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뒤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뉴레프트’를 주창하고 북한의 독재를 비판한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같은 합리적 인사도 있지만 아직은 좌파 내 소수세력이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새 이사진 선임 발표가 나온 뒤 사회 각계에 진지(陣地)를 구축한 육식성 좌파세력의 반발이 거세다. 병풍(兵風) 사기극, 탄핵 사태, 광우병 소동 등 고비마다 여론을 오도하고 국민을 선동한 사람들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다만 과거 좌파정권 시절 휴대전화 불법감청, 메이저신문 탄압, 권력실세 부정축재, 김정일 정권 지원 같은 권력의 실정(失政)을 비호(庇護)한 세력이 이제 와서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운운하는 것은 씁쓸하다.

▷법치를 존중하고 폭력과 결별한 합리적 좌파는 인정하고 대화해야 한다. 하지만 진실에 대한 의식이 희박하고 틈만 나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릴 기회만 찾는 세력에게까지 ‘유화정책’을 쓴다고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의문이다. 그들의 행태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정면으로 맞서 주장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무력화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앞당기는 길일 수 있다. 자유와 민주를 지키려면 실용적 지식 못지않게 신념과 용기도 필요하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