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프랭크 리치]맥주회동보다 무거운 美인종문제

  • 입력 2009년 8월 4일 02시 59분


미국에서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논의는 그동안 늘 그랬듯이 제대로 진행되기도 전에 끝나버렸다. 헨리 루이스 게이츠 하버드대 교수를 제임스 크롤리 경사가 체포한 사건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사건 당사자들을 초청해 맥주회동을 하면서 막이 내렸다. 주요 신문들은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 대신) 맥주회동 테이블에 어떤 맥주가 올라올지를 머리기사로 다뤘다.

먼저 오바마 대통령이 크롤리 경사에게 사과한 것은 불필요한 행동이었다. 대통령은 경찰에게 사과하는 대신 이 사건을 처음 신고한 루시아 훨런 씨가 고통받고 있다는 점을 널리 알렸어야 했다. 크롤리 경사가 경찰보고서에 “훨런 씨가 ‘두 명의 흑인이 게이츠 교수의 집 문 앞에 서 있다’고 신고했다”고 적은 것이 알려지면서 훨런 씨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휠런 씨는 정작 신고 당시 흑인이라는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도 휠런 씨는 사과를 받지도 못했고 맥주회동에 초대받지도 못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몇몇 유력한 백인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점이다. 2042년이면 미국 내에서 백인 인구보다 백인이 아닌 인종의 인구가 더 많아질 것으로 추산된다. 백인이 ‘소수인종’으로 바뀌고 있는 현실이 백인사회를 초조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폭스뉴스의 해설가 브리트 흄 씨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힌다는 것은 얼마나 모욕적인 일인가. 이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다. 게이츠 교수는 자신을 체포한 경찰관에게 이 무기를 사용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정작 인종차별을 무기로 사용한 사람은 히스패닉인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후보자를 인종차별주의자로 규정한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오바마 대통령이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주장한 폭스뉴스의 해설가 글렌 벡 등이다. 이들은 미국사회가 백인들의 예상보다 더 빨리 변하고 있다는 점에 절망하며 분노를 느낀다. 최근 인구조사국의 분석을 보면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의 투표가 2004년 대선에 비해 500만 표 이상 늘었다. 흑인 여성의 투표율이 특히 높았고 젊은이들 중에서도 흑인 투표율이 백인보다 높았다.

공화당 의원 11명이 대통령 후보들의 출생증명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마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출생지가 미국이 아니어서) 적법한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의혹을 파헤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이 의혹은 지난해 여름 처음 제기됐다. 그런데 게이츠 교수 사건으로 미국사회가 시끄럽고 상원에서 소토마요르 후보자의 인준 투표를 앞둔 시점에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또 미국사회의 권력은 자신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일부 백인은 오바마와 소토마요르, 오프라 윈프리 등 미국 사회의 중심에 서 있는 소수인종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일부 백인 엘리트는 백인 노동자 계층을 내세워 인종문제의 대리전을 펼치기도 한다. 크롤리 경사나 오바마 대통령의 세금정책을 정면 비판한 ‘배관공 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미국이 아직 인종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다시 논의할 수 있다. 앞으로 30년가량 인종문제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맥주회동이 인종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프랭크 리치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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