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학기]피어나는 백합 수출, 투자 실기 없어야

  • 입력 2009년 8월 5일 02시 56분


대관령 고랭지시험장에서 1961년 종서(씨감자) 생산을 시작한 지 반세기가 지난 오늘, 고랭지산 종서는 바이러스 이병률 0%대의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품질에 입성했다. 고랭지 감자 채종의 성공요인은 고랭지 특유의 기후 기상자원에 있다. 대관령고랭지(북부고랭지)는 여름이 서늘하여 감자의 생육에 알맞고, 밤 기온이 낮아 감자의 비대생장에 유리하다. 또 가을에 수확하므로 저장기간이 짧아 영양의 소실이 적다. 무엇보다 고랭지의 저온다습한 조건은 진딧물의 서식을 어렵게 하여 영양번식작물에 가장 치명적인 바이러스 병이 적다.

백합은 감자와 같은 저온성 작물이고 영양번식을 하므로 바이러스 방제가 종자 생산의 성패를 좌우한다. 같은 환경조건과 생리적 특성을 가진 감자는 북부고랭지에서 세계 최우량 종서를 생산하는데, 같은 조건에서 백합 종구(종자가 되는 알뿌리)의 생산은 꿈도 못 꿀 일인가? 백합은 평난지에서는 7, 8월의 고온기에 하면(夏眠)을 하므로 생육과 구근비대가 일시 정지될 수 있지만 고랭지에서는 하면 없는 생장이 가능하다. 또 고랭지는 자외선 양이 많아 뿌리 및 지하경의 발달을 촉진하는데 특히 북부고랭지는 9월 이후의 일조시간이 길고 밤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아 백합 종구의 충실도는 물론 비대생장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이다.

기상환경 이외에도 백합 종구 생산지로서의 북부고랭지에는 첫째, 종구생산보다 훨씬 까다로운 종서 생산 기술을 갖춘 인력이 풍부하고 둘째, 감자원종장이 있어 종구 생산관리를 겸영할 수 있으며 셋째, 감자원종장의 윤작 망실 30만 평을 백합 종구 포장으로 활용하면 바이러스를 거의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으므로 노지 생산에 의존하는 네덜란드나 일본보다 우량한 종구를 생산할 수 있다.

강원도는 고랭지(해발 800m)에서 백합 종구 생산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당시는 조직배양 기술체계가 다소 미흡하고 폭우 피해까지 겹쳐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근본적인 실패 원인은 양구사업을 중도 포기했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고 양구기술을 성공시킨 강원 강릉시 왕산면(해발 650m)의 이명용 농가가 이를 증명한다.

지난해 전국 백합 수출액은 1905만1000달러로 수입액(624만3000달러)보다 훨씬 많은 효자 품목이다. 한국 수출 백합의 미래를 위해 종구 자급은 필수조건이다. 어떤 변화에도 끄떡없이 매년 5억 원 넘게 수출하는 어떤 농민은 올해에도 60만 구의 종구 생산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의 오늘이 있게 한 비결이다.

종구 수입보다 종구 자급이 중요한 이유는 외화 유출분이 자국 농민에게 돌아가고 값싼 종구 공급은 안정적 절화생산 기반을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은 결정도 중요하지만 시기가 더 주효할 때가 많다. 수출이 급신장할 때일수록 어려울 때를 대비해야 하며 지금이 바로 종구자급기반 조성에 과감히 투자해야 할 때다.

성공에 완벽한 기회와 조건은 없다. 완전한 조건을 기다리다 보면 기회가 사라진다. 부족할 때 먼저 시도하면 기회를 선점할 수 있다. 북부고랭지가 갖춘 여러 조건은 종구 생산 조건으로서 부족함이 거의 없다. 한번 실수했다고 포기하는 정책이나 ‘절대로 안 되는 일’이라고 손사래를 치는 리더십이 있다면 미래는 없다. 시도하지 않으면 얻을 것도 없다는 말을 곱씹어 볼 일이다.

김학기 강릉원주대 식물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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