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부쩍 서민을 챙기는 정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경제위기에 신음하는 서민과 자영업자, 중소기업을 보살펴 국민통합을 이루고자 하는 의도야 굳이 시비할 이유가 없겠죠. 하지만 의욕만 앞서 정책적 효과나 예상되는 부작용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은 채 서민만 외친다고 서민살림이 나아지고 경제가 좋아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말 국무회의에서 "똑같은 신호위반이나 과속을 했을 때 돈 많이 버는 사람은 범칙금을 더 내고 서민은 조금만 내도록 할 수 없느냐"고 했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세금이라면 많이 버는 사람이 사회에 좀 더 많이 기여하는 누진제가 실질적 평등 원리에 맞을 수 있겠지만, 동일한 법규 위반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에 가난하다고, 혹은 부자라고 차등을 두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부자에겐 같은 전기료도 몇배로 더 물리고 세금도 수십배 물리자는 인기영합주의적 발상이 만연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처럼 개인의 재산상태나 소득이 투명하게 파악돼 있지 않은 나라에서 교통범칙금 차등부과제는 봉급생활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라디오 대담에서 농·어민 자영업자 등 서민이 중심이 된 '생계형 사면' 방침을 밝힌 뒤 청와대는 음주운전 초범자도 사면에 포함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생업에 쫓기다 신호위반이나 과속 등 운전법규 위반으로 면허정지 등을 당해 생계에 지장을 받고 있는 서민에게 제한된 범위에서 관용을 베풀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서민이나 생계와 직접 관계를 찾기 어려운 음주운전 사범에까지 사면권을 남용하는 것은 국민의 법질서 의식을 손상시키는 위험한 선심정책이 될 수 있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재정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최근 내놓은 '대학등록금 취업후 상환제', '기숙형 고교 기숙사비 경감대책' 등 복지성 예산사업에 들어갈 막대한 재원문제까지 얽혀 내년도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크게 악화될 전망입니다. 서민을 앞세운 포퓰리즘으로 경제를 왜곡시키고 법치를 문란시켰던 지난 정부의 전철을 이명박 정부가 되풀이해서야 되겠습니까. 동아논평이었습니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