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이후 43년간 국세청은 경제성장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면서 국가발전에 기여했다. 그러나 국세청이 ‘권력의 칼’로 쓰인 어두운 역사도 길다. 몇몇 정권은 경제계를 압박하고 정치자금을 거둬들이는 과정에서 기업과 개인의 재산 관련 정보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는 국세청을 수족처럼 부렸다. 권력의 잘못된 폭주(暴走)를 비판하는 집단과 개인을 흠집 내거나 길들이려는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적도 있었다. 권한을 악용해 거액의 뇌물을 받아 챙기거나 재산을 숨기는 비리(非理)를 저지른 공무원도 적지 않았다.
▷국세청이 어제 백용호 신임 청장 주재로 열린 전국세무관서장 회의에서 강도 높은 개혁방안을 내놓았다. 본청 국장급 11명 중 감사관 납세자보호관 전산정보관리관 등 3명을 외부에서 영입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연간 매출액 5000억 원 이상 대기업은 4년 주기의 순환조사를 원칙으로 하고, 국세행정위원회와 내부 인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백 청장은 “조직과 인사의 투명성과 세무조사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납세자 권익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다짐했다.
▷최근 10여 년간 국세청은 각종 추문에 휩싸이면서 이미지가 크게 실추했다. 1999년 임명된 12대 안정남 청장부터 2007년 취임한 17대 한상률 청장까지 6명의 국세청장 가운데 안정남 손영래(13대) 이주성(15대) 전군표(16대) 한상률 씨 등 5명이 재임 중이나 퇴임 후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렸다. 이들은 청장 시절에 여러 차례 ‘뼈를 깎는 개혁’을 약속했지만 번번이 물거품이 됐다. 세무행정에 대한 불신은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국세청이 이번에는 과거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고 정치적 외풍(外風)에서 자유롭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기관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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