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미국 정부는 ‘바이오 주권’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바이오 주권이란 자국 내에서 백신을 비롯한 필수의약품을 생산하고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바이오 주권이 없으면 신종 인플루엔자와 같은 병이 번질 때 다른 나라에 손을 벌려야 하고 그래도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 못지않게 대유행(팬데믹)에 대비하는 게 대통령의 의무”라며 의회를 설득해 예산을 확보했다. 현재 미국이 전 국민의 50%에게 투약할 수 있는 타미플루를 확보하게 된 것도 그 덕분이다.
▷백신은 전염병의 유행시기가 닥치기 전에 항체가 형성될 수 있도록 적기(適期)에, 필요한 양을 공급해야 한다. 독감 백신은 유정란을 이용해 생산되는데 생산에만 몇 개월이 걸리고 상반기에 다음 시즌의 백신을 한꺼번에 제조하는 체제로 운영된다. 이 때문에 전염병 유행에 대한 예측에 실패하거나 긴급한 사태가 발생하면 처음부터 다시 생산라인을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조달 방법이 막막해진다.
▷우리나라는 바이오 주권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국내에서 독감 백신을 생산하는 곳은 녹십자 화순공장이 유일하고 백신 제조에 필요한 무균 유정란을 생산해 녹십자에 납품하는 회사는 청란 등 한두 군데뿐이다. 정부는 어제 신종 플루 치료제인 항바이러스제와 백신 확보에 1700억 원의 추가예산을 투입해 신종 플루에 대비하기로 했지만 많이 늦었다. 신종 플루는 무섭게 번지고 있는데 부족한 백신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웃돈을 얹어주거나 권력과 연줄을 동원하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런 사태가 올까봐 걱정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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