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은 ‘여우 사냥’이었다. 일본은 이 사건을 정부와 무관한 극우파의 소행으로 축소하려 했으나 미우라 고로(三浦梧樓) 일본공사가 가담한 범죄였음이 외교문서 등을 통해 나중에 밝혀진다. 최문형 한양대 명예교수는 미우라는 종범(從犯)이고 주범은 미우라의 전임자인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공사라고 지목한다. 이노우에는 일본 외상과 내상을 지내고 ‘조선 문제’에 관해 전결권을 부여받았던 인물이다. 결국 시해사건은 일본 정부가 주도한 국가범죄였다.
▷일본전문가인 이종각 씨가 최근 ‘자객 고영근의 명성황후 복수기’(동아일보사 간행)를 펴냈다. 저자는 일본에 정보를 팔아넘기고 명성황후 시해를 도왔던 조선인 훈련대 대대장 우범선과 그를 살해한 자객 고영근의 행적을 따라가며 역사의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보여준다. 민씨 가의 노복 출신으로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았던 고영근은 일본으로 도망가 일본 여자와 결혼해 살던 우범선을 살해하고 체포된다. 고종황제는 여러 외교 경로를 통해 고영근의 선처를 요구해 그는 5년여 감옥살이를 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 후 고종황제와 명성황후가 묻힌 홍릉을 지키는 능참봉이 된다.
▷일본 아사히TV는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당시 범인들의 후손이 100여 년 만에 한국을 찾아 사죄하는 모습을 담은 특집뉴스를 어젯밤 ‘보도(報道)스테이션’ 프로그램에서 14분간 방영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라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본 미디어에 등장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뮤지컬 ‘명성황후’를 제작한 에이콤은 수차례 일본 진출을 모색했으나 일본 극우세력의 훼방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한일 간 역사인식 격차를 줄이는 일은 사실을 아는 데서 출발한다.
정 성 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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