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사 해체와 그에 따른 한미동맹 체제의 변질 가능성도 대표적 난제인데 이 역시 일찍부터 예견되던 문제였다. 노태우 정부에서 국방태세를 총체적으로 재정비하려 할 때 ‘우리 국군을 통할하는 통합사령부와 연합사를 함께 계룡대에 위치시키고, 육해공 3군 본부는 대폭 감축하여 국방부로 통합하자’는 건의를 올렸다. 한국의 전략적 방위태세를 혁신하고 자연스럽게 국군의 현대 과학기술전쟁 수행 능력을 갖추게 하려는 비전이었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증폭되는 반미정서에 대비해 차제에 한미동맹의 미래를 관리하려는 것이었다. 내심 훗날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나면 폐허가 될 것이 분명한 평택기지 건설의 천문학적 재정 부담을 막자는 뜻도 있었다. 아쉽게도 오랜 타성을 뒤엎지는 못했지만 만약 제대로 되었더라면 오늘의 한국 안보와 한미동맹은 훨씬 안정적이었을 것이요, 연합사 해체도 저리 급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평택기지를 둘러싼 파괴적 사회갈등도 없었을지 모른다.
한반도 불확실성 키운 美中접근
최근 미중 접근이 한반도 미래에 던질 불확실성도 우려가 된다. 사실 떠도는 말처럼 북한 급변사태 시 미국이 정말로 중국을 끌어들이려 한다면 우리가 각별히 유의하고 우려해야 할 사안임에 틀림없다. 6·25전쟁은 우리의 분명한 군사적 우위 속에서도 휴전으로 매듭지어졌다. 그것은 한국의 생존과 미래 개척을 위해서는 튼튼한 한미동맹뿐만 아니라 중국의 이해와 공감도 얻어야 한다는 실증적 교훈이었다. 우리가 좀 더 긴 안목으로 한중관계를 적극 관리했더라면 오늘 한반도의 안보환경은 많이 달랐을 것이고 적어도 미중 간의 수상한 거래에 새삼 긴장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1992년 수교 후 한중관계는 경제적 사회적 거의 모든 분야에서 유례없이 급속히 발전했다. 안보 분야라고 해서 전혀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2000년 중국국방대학교 강연에서 주한미군에 관한 힐난(詰難)성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내가 ‘한반도에서 완전 철수했던 미군을 다시 불러들인 것이 바로 6·25 남침이요, 지금은 그들 덕분에 한반도 평화가 유지되고 그래서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도 가능한 것 아니냐’라고 대답하자 참석자들이 웃으며 받아들였다. 더욱이 그 강의록을 중국군 고위간부들이 돌려보았다는 것을 보면 한미동맹을 튼튼히 하면서 중국의 마음을 얻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조금만 더 현명하게 멀리 내다보았더라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뻔했을 텐데 그 길을 가지 않음으로써 오늘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연합사 해체’와 국군의 ‘복무기간 단축 및 병력 감축’ 같은 참여정부의 포퓰리즘적 정책을 특별히 경계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당장은 편하겠지만 자칫 훗날 미국은 중국과만 손을 맞잡고 있고, 한국은 홀로 230여만의 재래식 군사력으로 핵을 가진 잘 훈련된 북한의 900여만 대군과 맞서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적어도 그런 일은 없어야 할 것 아닌가.
혈맹관계와 전략적 동반자관계
이제 잘못 박힌 말뚝은 서둘러 뽑아내서 국방태세와 한미동맹을 재정비하고, 한중관계도 새롭게 열어 나가야 할 것이다. 노태우 정부는 냉전시대 말의 예민한 시대에 공산권의 문을 여는 파격적 정책을 수행하면서도 한미관계를 원만하게 이끌어 갔고, 지금 정부는 작년 5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합의했다. 한미 간의 전통적 혈맹관계를 튼튼히 하면서 중국의 마음을 얻는 것이 한결 용이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쨌건 이렇게 두루 잘 관리해 나가야만 북한 핵 위협 아래서도 우리 안보상황을 안정시키고 나아가 한반도 통일번영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 나갈 수도 있다. 안보의 시계(視界)를 크게 넓히고 전략적 지혜를 적극 발휘해야 할 때다.
김희상 객원논설위원·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 khsang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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