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산들로 둘러싸인 카불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카불의 모든 거리는 얼마나 마음을 사로잡는가/…/지붕 위에서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벽들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도 셀 수도 없으리….’
시에 나오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란 구절은 아프간 여성의 질곡의 삶을 그린 소설의 제목으로 쓰였다. 아프간 출신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소설에서 왕정붕괴, 소련의 침공, 탈레반의 득세, 미국의 침공 등 혼돈의 역사 속을 헤쳐 온 여성을 그렸다.
소설에도 나오는 1996년부터 5년간 계속된 탈레반 집권시절의 광기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시절 시계는 과거로 돌려졌다. 살인 및 간통죄에 대한 공개처형, 도둑질에 대한 손목 자르기 등 엄격한 이슬람 율법이 적용됐다. 정신을 좀먹는다는 이유로 TV 음악 영화가 금지됐다. 와인과 바닷가재 등 기호품도 자취를 감췄다. 여성은 외출 때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해야 했고, 10세 이상 소녀는 등교가 금지됐다. 바미안 석불이 파괴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탈레반 정권은 9·11테러 직후 미국의 침공으로 무너졌다. 오사마 빈라덴에게 피난처를 제공한 게 침공 이유였다. 이후 아프간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하미드 카르자이 정부가 들어섰지만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오폭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나오고 뉴욕타임스 기자가 탈레반에 납치됐다.
카르자이 정부는 아프간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 빈자리를 틈타 한때 산악으로 쫓겨난 탈레반이 다시 세를 넓히며 카불을 위협하고 있다. 남부는 여전히 탈레반 세상이다. 1990년대 중반 등장할 때 ‘학생들’이란 이름처럼 깨끗함으로 환영받던 탈레반, 이제 그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탈레반은 초심을 버리고 부정도 저지르는 집단으로 변질됐다. 아편을 재배해 파는가 하면 납치와 인질극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조직폭력배처럼 보호비 명목으로 상인들로부터 돈을 뜯어낸다. 미국 등 연합군이 민간에 푸는 돈은 탈레반으로 흘러들어가 무기를 사는 돈이 되고 있다는 게 시사주간 타임의 분석이다.
미국은 아프간이 왜 ‘제국의 무덤’이라 불리는지 알게 됐다. 지금까지 무굴제국 몽골제국 대영제국 구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이번에는 미국이 그 수렁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전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벌인 2개의 테러와의 전쟁을 이어받고, 우선순위를 아프간에 두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프간 전비는 늘어가고 인명 피해는 800명을 넘어섰다. 게다가 카르자이 정부가 이번 대선에서 선거부정을 저지른 정황마저 나와 미국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전쟁을 계속 수행하자니 상황이 녹록하지 않고, 그렇다고 모양새 있게 발을 빼기도 쉽지 않은 형국이다.
오바마 정부는 아프간전쟁의 명예로운 마무리를 위해 병력 증파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우리가 아프간의 상황 변화에 관심을 둬야 하는 이유는 여성 등 보편적 인권문제도 있지만 아프간 파병이라는 쉽지 않은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윤양섭 국제부장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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