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휘발유값, 이번엔 잡을까

  • 입력 2009년 9월 14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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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추석 민생 및 생활물가 안정’을 주제로 열린 정부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기름값이 도마에 올랐다. 이명박 대통령은 달러 환율과 국제 유가가 하락했고, 할인점의 석유제품 판매 제도 등을 도입했는데도 기름값이 오른 데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정부는 기름값을 내리기 위해 △대형 할인점 주유소를 늘리고 △농협에서 유류를 공동구매해 주유소에 공급하며 △정유사 등의 가격 공개 범위 확대와 모니터링 강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휘발유 등 석유제품은 수요자는 많은데 생산자와 공급자가 제한돼 있어 늘 독과점 및 폭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휘발유 가격은 많이 뛰지만 국제 가격이 내려도 휘발유 소비자가는 찔끔 내리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유통망을 늘리고 다양한 가격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공개함으로써 공급자에 종속된 시장을 소비자 중심으로 돌리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경기 불황으로 수입이 줄어든 소비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이런 조치들로 휘발유값은 실제 얼마나 떨어질 수 있을까.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9월 첫째 주 평균이 L당 1695.8원이었다. 이 중 교통에너지환경세 529.0원, 주행세 137.5원 등 세금이 모두 890.5원(소비자가의 52.5%)을 차지했다.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한 가격은 699.7원(41.3%), 기타 주유소 마진 등이 105.6원(6.2%)이었다.

한국의 휘발유 세금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다. 세수에서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높다. 정부가 휘발유값을 낮춘다면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금에 대해 입을 다무는 건 정직하지 않다. 자동차로 영업을 뛰는 ‘서민들’을 염려해 기름값을 낮추려면 (기름값이 오르면 따라 오르는) 부가가치세부터 손봐야 한다. 하지만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세금을 낮추면 소비촉진 등 부작용이 우려돼 세제를 바꾸는 일도 쉽지 않다.

정유회사들은 얼마나 많은 이익을 취하고 있을까.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의 올해 상반기(1∼6월)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은 3.6%(정유부문은 1.8%)였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다른 대기업들의 같은 기간 순이익률 7∼9%와 비교할 때 정유사들이 폭리를 취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L당 이익은 13.1원꼴로, 정유사가 이익을 전혀 남기지 않고 소비자에게 모두 돌려준다 해도 중형차에 기름 한 번 넣는 데 786원(60L×13.1원) 정도 내릴 수 있을 뿐이다.

대형 마트의 주유소 진출도 녹록지 않다. 지난해 초에도 기름값을 내리려는 정부 방침에 따라 대형 유통업체들은 마트 안에 주유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역 주유소들이 “다 망한다”며 반발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대형 점포와 주유소 간 거리를 제한하는 ‘이격 거리’ 규정을 만들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손님을 끌려고 마진 없이 휘발유를 파는데 이격거리제를 실시하면 주유소를 만들 수 없다”고 한다.

이처럼 휘발유값의 구성 요소들을 살펴보면 하나하나가 값을 내리기에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5월부터 정유사들의 주유소 공급가를 공개토록 했는데 그동안 기름값이 내리기는커녕 더 올랐다.

이번에는 정부가 헛심만 쓰지 않고 제대로 휘발유값을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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