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백진현]웅변이 필요한 반기문 총장

  • 입력 2009년 9월 14일 02시 52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리더십에 대한 논란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여름 서구 언론들은 임기 절반을 맞은 반 총장의 활동을 점검하는 일종의 중간평가를 했다.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리더십 부재를 질타하는 비판의 소리도 나와 적지 않은 논란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유엔의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노르웨이 외교관이 반 총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작성한 대외비 문건이 언론에 유출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우리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첫 한국인 유엔사무총장에 대한 기대와 자부심이 큰 만큼 이런 논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고 걱정도 된다.

비판자도 인정한 초인적 헌신성

우선 반 총장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이 나오는 것 자체는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유엔 사무총장은 192개 회원국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수많은 문제에 목소리를 내야 하는 만큼 비판과 논란은 피할 수 없다. 비판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또 모든 비판이 공정하고 귀담아들을 만한 것도 아니다. 전혀 사실에 근거하지 않거나 심지어 사실을 왜곡한 비판도 있다. 가령 아무 하는 일 없이 명예박사학위나 수집하러 다닌다는 비난이 그렇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반 총장을 ‘궂은일은 마다하고 자기 욕심이나 챙기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은 악의적 왜곡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반 총장의 비판자들조차 그의 초인적 근면성과 헌신성만은 인정한다. 2년 반은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성과도 적지 않았다. 반 총장은 결렬 위기에 있던 기후변화 협상에 돌파구를 열었고 세계 식량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사이클론이 휩쓸고 간 미얀마를 방문해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수용하도록 했다. 수단 정부를 설득해 비극의 땅 다르푸르에 평화유지군 배치를 받아들이도록 이끌었다.

좀 더 귀담아들어야 할 비판도 있다. 반 총장이 독재자나 압제 정권에 대해 지나치게 유화적이고 강력하게 맞서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반 총장은 독재자와도 대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 정면 대립보다는 상대의 체면을 세워주며 뒤에서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일이다. 말하자면 반기문식 햇볕정책이고 포용정책인 셈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이 북한을 다루는 적절한 방식인지를 두고 시비가 끊이지 않듯이 반 총장의 조용한 외교 역시 마찬가지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의 미얀마 방문에서 보듯이 성과가 뒤따르지 않으면 비난은 거세어질 수밖에 없다. 독재자들에게는 부드러움보다 단호함이, 당근보다 채찍이 때로는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상대 움직이는 ‘수사의 힘’ 발휘를

매사에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사무총장으로서 존재감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유엔이 국제연맹과 달리 사무총장에게 폭넓은 정치적 역할을 부여한 것은 사무총장이 국제사회 전체를 대변하는 리더십을 발휘해 달라는 취지에서였다. 사무총장은 인권 평화 환경 개발 등 유엔이 지향하는 가치와 유엔 회원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약소국들의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때로는 강력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과감하면서도 신중하게, 원칙을 지키되 타협과 절충도 마다하지 않는 능수능란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야 한다. 말보다 행동을 중시하는 반 총장 특유의 ‘조용한 리더십’도 필요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웅변과 수사의 힘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유엔 사무총장은 트뤼그베 할브단 리 초대 사무총장이 ‘지구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직’이라고 했을 만큼 힘든 자리다. 5년 임기의 후반을 맞는 반 총장이 세간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되 적절한 비판은 수용해 남은 기간 사무총장으로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기를 바란다.

백진현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서울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