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판자촌을 찾은 어느 날, 수도도 급하고 변소도 부족했고 지붕에 플라스틱도 얹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직접 도와줄 수 없는 것이었다. 여사는 청년들을 모아놓고 “국수공장을 해 보는 게 어떠냐. 정부에서도 분식을 장려하니 수요가 있다”며 연락을 달라 했다. 며칠 뒤 20대 7명으로부터 답이 왔다. 여사는 이들이 자립의지가 있는지 직접 면담하고 공장용지까지 확인한 후 국수틀과 밀가루를 사 주었다. 공장은 대성공했다. 여사의 경험들은 훗날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지도자 구상에 씨앗이 되었다고 한다.
새마을운동은 알다시피 박 전 대통령의 국가 개조 프로젝트다. 위로부터의 개혁임에 틀림없지만 역사학자 김영미 씨(42·국민대 일본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신간 ‘그들의 새마을운동’에서 “새마을운동 이전에 ‘새(新) 마을’을 열망한 민초(民草)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문헌에 갇힌 역사학을 현장으로 불러낸 연구자의 10년 결실인 이 책은 우선 증언을 통한 미시사적 역사 연구서로 값어치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암울했던 1980년대를 대학생으로 살며 세상을 회의하던 저자가 1990년대 전국을 돌아다니며 농민들을 만난 뒤 나라와 역사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울림이 크다. 그의 본래 연구목적은 새마을운동이 아니었다. 굵직굵직한 현대사의 고비마다 단지 계몽 대상으로만 인식되어온 민중의 삶을 추적하다 ‘새마을운동’이라는 사건과 만났다고 한다.
‘박정희 정부의 새마을운동은 1971년 전국 3만3267개 동리에 시멘트 300부대를 지원하면서 시작됐지만 시멘트를 어떻게 사용할지, 국가 정책을 어떻게 수용할지 결정했던 주체는 농민이었다.’
두 차례나 새마을운동 모범마을 포상을 받았던 경기 이천시 아미리에는 1930년대부터 마을환경 근대화에 앞장섰던 최장환 할아버지(1870∼1945)가 있었다. 1970년대 이 마을의 새마을운동 주역들은 어려서 최 할아버지의 농촌운동을 보고 배운 청년들이었다. 1972년 3월 11일 ‘대한뉴스’에 소개된 청년지도자 이천 나래리 이재영 할아버지(73)도 이미 1960년대 후반 고향에 투신해 농촌운동을 한 기수였다. 김 씨의 책을 읽다 보면 정치 리더십이란 민중을 단지 이끄는 게 아니라 그들의 자생적인 열망을 어떻게 포착해 어떤 에너지로 집중시키느냐 하는 것에 성패가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젊은 세대에겐 6·25전쟁만큼이나 아득한 새마을운동이지만 외국사람들은 배우느라 바쁘다. 지금까지 92개국 4만7000여 명의 외국인이 방한해 ‘새벽종이 울렸네’를 배우며 합숙훈련을 했다고 한다. 남들은 배우지 못해 안달하는 우리 역사를 폄하하는 것은 이제 당치 않다. 더 나아가 위대한 리더에만 국한하지 말고 민중적 에너지에 초점을 맞춘 역사인식도 추가해야 한다. 일제의 강점과 전쟁을 겪으며 공동체를 일으키고 지켜온 어르신들의 구술과 증언을 듣는 것도 필요한 작업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허문명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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