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이영희 장관에 대해 노동계는 비정규직법 개정을 하려다 실패한 것과 관련해 ‘실업대란을 부추긴 양치기’라는 비판을 한다. 일부 관료들은 그를 ‘정치적으로 힘없는 장관’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13년째 유예된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제도를 다시 유예하려는 각종 공작을 차단하고 원칙을 지켰다. 쌍용차 노사분규 대응에서도 원칙을 지켜 사회불안의 확산을 막은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한 정권 안에서도 노동부 장관이 어떤 모습으로 노동 현안을 해결하느냐에 따라 노사관계의 양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1기 권기홍 장관은 부임하자마자 파업 막바지 단계였던 두산중공업을 직접 방문해 노조의 기대감을 부풀려놓아 파업 기간이 길어졌다. 당시 정부는 노조를 지지기반으로 삼기 위해 친(親)노조 성향의 정책을 펴는 경우가 많았다.
노동장관 따라 노사 양상 달라져
노 정부 2기 김대환 장관은 노사관계에서 공정한 룰을 강조했다. 이는 청와대가 대기업 노조의 투쟁적 노동운동의 병폐를 비판하고 노조 간부들이 횡령비리 사건으로 줄줄이 입건되던 상황과 궤를 같이한다. 노동계는 김 장관 임기 내내 각을 세웠지만 많은 전문가는 그가 노사관계에서 법과 원칙을 정립하고자 노력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김 장관은 퇴임 후에도 “정치권이 표를 의식해서 사안마다 노동계의 눈치를 보면 국가의 근간을 규정하는 정책은 누더기가 된다”고 개탄한다.
3기는 이상수 장관이었다. 이 장관은 정치인 출신답게 노동 현안의 정치적 해결을 선호했다. 이랜드의 장기 노사분규 때 권기홍 장관이 그러했듯 현장을 방문해 정치적이고 극적인 타결을 모색했으나 실패했다.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의 유예는 없다고 공언하다가 2006년 9월에 들어서 ‘3년 무조건 유예’를 정치적으로 타결했다. 이 밖에 특수고용직을 노동법 적용의 대상에 포함하는 문제를 인기영합적으로 추진해 균형감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2기의 임태희 장관 후보자도 정치인이다. 장관직을 잘 수행한다면 향후 정치인 출신 노동부 장관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 노사단체로부터 욕을 먹더라도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위한 긴 호흡의 노동행정, 경제를 생각하는 노동정책을 펴면서 어떤 역경이 닥쳐와도 노사 어느 쪽에도 휘둘리지 않고 공정한 노사관계 규칙을 정립하는 장관의 모습을 보고 싶다. 특히 복수노조 허용,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또다시 유예한다면 우리 노사관계가 무원칙과 후진화의 함정에 빠질 것임을 유의해야 한다. 복수노조와 전임자 제도 논의에서 한쪽으로는 노동계 편을 들어주고 다른 쪽으로는 경영계 편을 들어주는 ‘정치교환’식 누더기 입법을 경계해야 한다.
노사가 대승적으로 타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무리하게 현행법을 대체하는 입법을 시도해서도 안 될 것이다. 현행법은 2010년부터 복수노조를 허용하고 전임자 임금지급은 금지하되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을 장관이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세부 사항을 설계해 가는 방안이 타당할 것이다.
노동부문 개혁해야 선진화 가능
현재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구성에 비추어 어설프게 법개정을 시도하다가는 무조건 유예의 빌미만 제공할 수 있다. 비정규직법 개정은 무조건 서두르기보다 입법효과에 대한 좀 더 과학적 분석에 기초해 차분히 진행하는 것이 좋다. 내년도 경기는 루트(√)형으로 회복되지만 노동시장은 꿈적도 않는 욕조형의 바닥을 헤맬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와 같은 희망근로 및 청년인턴 중심의 단기 일자리 창출 대신에 노동시장 인프라의 질적 개선과 내실 있는 사회적 기업 육성을 통한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고용정책의 패러다임 수정이 불가피하다.
한국 경제의 선진화는 노동부문의 개혁 없이는 앞당기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부 장관의 어깨에는 대한민국 선진화의 과제가 걸려 있다고 하겠다. 노동부 장관이라는 자리는 정치인으로서의 장래를 도모하기 위한 징검다리가 아니라, 공익을 위해 외로이 투쟁하고 고민하는 자리다.
조준모 객원논설위원·성균관대 교수·경제학 trustcho@skku.edu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