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서하진]퇴짜 맞은 원고

  • 입력 2009년 9월 25일 02시 50분


소설가라고 소설만 쓰는 건 아니다. 소설 아닌 글 중 가장 빈번히 쓰게 되는 것이 수필이다. 소설에 비해서 분량도 내용 부담도 적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때문에 고민하는 점이야 다를 수 없고 글의 특성상 내 사생활, 혹은 감정 노출의 수위를 조절하는 일이 성가시다 할 수 있으나 소설 쓸 때보다 마음이 가벼운 건 사실이다. 뿐이랴, 분량에 견주어 원고료도 상당히 높은 편이며 본업이 아니므로 성과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결정적인 매력이 있다.

그런 수필 한 편을 보냈던 지난주, 여느 때처럼 원고를 쓰고는 바로 잊어버렸으나 여느 때와는 다른 일이 벌어졌다.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온 청탁자가 다시 써달라는, 뜻밖의 요구를 했다. 그이의 말은 이랬다. 우리 회사는 집을 지어 분양하는 곳이다, 이 사보는 분양 예상자에게 홍보 차원에서 배포하는 자료이다, 집과 가족에 대해 따뜻한 이야기를 써주셨으면 한다….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나는 물었다. 그거 다 청탁서에 쓰여 있던 사실 아니냐, 내가 쓴 게 그거 아니냐, 집이 있고 가족이 있고 그만하면 따뜻하기도 하다고 보는데?

퇴짜 맞은 그 글에서 나는 신종 인플루엔자 이야기를 했다. 신종 플루라는, 전 지구적인 전염병 때문에 어려움이 많지만 그로 인해 가족 상호 간의 관심이, 염려가 깊어지고 잊었던 애틋함이 살아나기도 한다, 내 집 역시 그러하였다는 이야기였다. 난감한 기색의 어린 편집자는 선생님의 말씀이 틀린 건 아니지만 우리의 콘셉트와는 맞지 않는다고 거듭 이야기했다. 내 쪽에서는 슬슬 화가 치밀어서 마침내 말했다. 알았다, 맞지 않다면 싣지 마라, 자꾸 따뜻한, 따뜻한 하는데 내 보기에는 그 정도면 충분히 따뜻하다, 나로서는 그 이상 말랑말랑한 이야기는 쓰지 못한다….

자존심으로 먹고 사는 작가들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고 나서 화를 채 가라앉히기도 전에 다시금 휴대전화가 울렸다. 실장님인지 국장님인지 대단히 상냥한 음성의 여자는 부하직원의 실수를 정중하게 사과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선생님 글이 정말 좋은데요, 그냥 실을 수 없어 정말 안타까운데요…. 대체 뭐 하자는 거야, 다시 쓰라니 어림없다 싶던 내 마음은 그 순간 맥없이 무너졌다. 결국 나는 편집자가 보내온 이전 수록 원고를 읽고 비슷하게 따뜻하고 비슷하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시 써서 보냈다. 내 글이 정말 좋다는 데야 뭐 어쩌겠는가 말이다.

왜 그리 화가 났던가, 이유는 단순하고 분명했다. 거절당했다는 사실. 이제껏 십수 년 동안 이런저런 글을, 이런저런 매체에 발표하면서 내 글이 거절당한 일이 없었던 거였다. 단 한 차례도! 수정 요구를 받은 일조차 있었던 것 같지 않았다. 비단 내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대개의 경우 작가는 청탁을 받거나 계약을 하고 소설을 쓴다. 마감이 임박해 전화를 걸어오는 편집자는 한결같이 쩔쩔매며, 미안해하며, 창작의 고충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을 민망해하며 독촉해야만 하는 자신을 죽여 달라는 듯 죄스러운 어조로 이야기한다. 그런 상황에 나는 오래도록 길들어 있었던 거였다.

사실 작가란 자존심을 먹고사는 족속이다. 책이 팔리지 않아도, 다른 이가 뭐라 하더라도, 평론가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 글은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다른 누구도 나처럼 쓰지는 못한다는 믿음 하나로 사는 이들이다. 그 믿음으로 스스로 최면을 걸고 그 힘으로 자괴감을 이겨 나가는 이들이다. 그 믿음이 모든 정력과 시간을 아낌없이 글쓰기에 투자하도록 만들고 무시로 자신의 글에 대해 이는 의구심, 명치끝이 타는 듯, 뒤통수가 땅기는 듯한 의구심을 잠재우게 한다.

신경증 환자 돼 가는 건 아닐까

그러나 돌이켜보자면 그 자존심은 정직한가. 혹 그것은 거절당해 보지 않은, 거부의 경험을 갖지 못한, 거부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자만심의 다른 이름은 아닐까. 작가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부재하는 우리 현실에서 작가는 점차 신경증 환자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출판계에도 가요계의 SM이나 YG와 같은 관리회사가 생기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적지 않은 작가가, 스스로 일정 수준에 올랐다 자부하는 작가가 퇴짜를 맞고 원고를 돌려받는 수모를 겪는다면 또 어떨까. 작가들은 절치부심, 이를 갈며 밤을 새우겠지만 또 다른 문제, 예컨대 지나친 대중영합주의가 횡행할 염려가 있으니….

우리 문단에서 그런 염려로부터 자유로운, 경험과 식견과 안목과 작가에 대한 애정을 고루 갖춘 적합한 인물이 있을까. 있다면 누구일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원고 하나 퇴짜 맞은 덕에 작가로서의 자세, 한국 소설의 현재와 미래까지 통틀어 조망할 기회를 가졌으니 세상 어떤 일도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서하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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