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다섯 엄마인 펠로시
‘아르마니를 입은 좌파’라는 비아냥거림도 나오지만 아이를 다섯이나 낳아 기른 주부다. 그는 아이들 넷을 대학에 보낸 뒤 고교생 막내딸로부터 출마 허락을 받는다. “살라(전 하원의원)가 자기 자리에 나를 추천했어. 네가 대학에 갔을 때라면 훨씬 좋겠지. 네가 원치 않으면 안할 거야. 어느 쪽이든 나는 행복한 결정이라고 약속할 수 있단다.”
반항적 사춘기를 겪고 있던 딸의 대답은 간단했다. “엄마, 엄마 인생을 사세요.” 펠로시는 자서전 ‘자신의 숨겨진 힘을 깨달아라’에서 딸의 말을 듣고 출마해 당선됐다고 회고한다. 그는 정치는 위기상황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거친 정치판에서 얻은 경험에 비추어 봐도 가장 어려운 일은 가족을 보살피는 일이라는 그의 고백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사회의 어떤 역할도 ‘엄마’의 확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정치 입문 전에 이렇다 할 경력을 쌓지 못하고 민주당 자원봉사 경력만으로 의회에 진출한 그를 보며 자연스레 우리나라 국회가 오버랩 된다. 여성 의원이 많아졌지만 펠로시처럼 전업주부가 국회의원이 된 경우는 못 보았다. 비례대표는 전문성을 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편이 사망하거나 구속될 때 아내가 지역구를 물려받는 사례가 있긴 했지만 성공한 정치인으로 기록된 사례는 없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19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7년 후인 2016년 노인 인구가 유소년 인구를 초과하는 인구 역전이 시작되며 2018년부터는 총인구가 감소한다. 정부는 영·유아 보육시설 확충, 공공주택 다자녀가구 우선배정 등 보육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데 정책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다자녀가구에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저출산 정책에서 투자 확대는 중요하다. 하지만 돈만으론 안 된다. 돈 몇 푼 때문에 아이를 낳을 여자는 별로 없다. 여성은 행복한 가정과 직업적 성공을 동시에 원한다. 한국에선 ‘펠로시 모델’을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것이 문제다.
내친김에 역대 ‘여대생이 닮고 싶은 여성’을 찾아보았다. 한때 1위를 차지한 박근혜 의원. 여성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주고 있지만 미혼이다. 역시 1위를 한 한비야. 흠, 지도 밖으로 행군하려면 아이가 딸려있으면 곤란할 것 같긴 하다. 여대생들에게 인기 있는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 아들 하나를 두었지만 태어날 때부터 외할머니와 친척 손에 맡겨 키웠다고 고백했다. 2000년부터 2년 연속 닮고 싶은 여성에 선정된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 둘째를 임신했다고 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뭐라고 할까. 성공하려면 결혼과 출산을 선택해선 안 된다는 무언(無言)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多출산 롤모델이 없다
독신인 프랑스 라시다 다티 법무장관은 지난해 여자 아이를 출산했다. 언론은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궁금해 했지만 출산 자체는 뉴스감도 아니었다. 미국 공화당 부통령후보였던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는 장애아를 포함한 다섯 아이의 엄마란 사실이 선거운동에 보탬이 되었다. 성공한 여성 가운데 ‘다둥이 엄마’가 없는 우리 현실이 이런 나라들과 대비된다. 다출산 의욕을 자극할 롤모델이 없다. 여성부 장관을 아이를 다섯 낳은 여성으로 임명해보면 어떨까.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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