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허문명의 발상지 동북아권은 세계 4대 문명 중 거의 유일하게 행세하는 지역이다. 19세기 서구열강의 무력에 빗장을 여는 수모를 당했지만 20세기 중후반 모두 다시 일어섰다. 일본이 먼저였다.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가 패망했지만 6·25전쟁을 계기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세상은 일본의 성공에 놀라워했다. 뒤를 이어 한국이 불모지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일본이 주춤하는 사이 조선과 중화학, 반도체, 자동차산업으로 몸집을 키웠다. 조선과 반도체는 이미 일본을 넘어선 지 오래고 자동차도 급추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동을 건 게 중국이다. 덩샤오핑이라는 불세출의 인물이 개혁개방을 들고 나온 지 30년 만에 중국은 그야말로 개벽을 했다. 마오쩌둥이 60년 전인 1949년 10월 1일 ‘중공’을 건국할 때 내건 목표들, 푸창(富强)과 국제적 존경, 영토적 통합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 미국과, 유일한 맞수 중국을 합쳐 일컫는 G2로 떠올랐다. 경제규모에선 내년에 일본을 따라잡고 2위로, 2020년이면 미국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런 까닭에 공산당 주도의 권위주의적 발전모델, 베이징 컨센서스가 개발도상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한중일 3국은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교류했지만 전쟁과 침략으로도 얽혀 있다. 여전히 동북공정이나 독도 문제,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등 역사-영토 문제로 다투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부의 에너지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꿔야 할 때다. 지금이 적기다. 하토야마 유키오 새 일본 총리는 아시아로 눈을 돌리려 한다. 한류 팬이라는 부인 미유키 여사도 최근 한일축제마당에 참석해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라는 한국말로 인사해 양국 간 심리적 거리를 확 좁혔다.
요즘 3국은 한류라는 문화상품으로 가까워졌다. 때로는 영토 문제나 자존심 문제로 누리꾼들이 싸우지만 그러기에는 이웃 중국과 일본이 너무 밀접하고 중요하다. 세 나라의 경제적 연계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각국 수도의 첫 글자를 딴 ‘베세토’ 교류도 활발하다. 인적 교류를 보자. 지난해 한국에서 일본을, 일본에서 한국을 찾은 관광객은 500만 명에 가깝다. 또 한국과 중국을 서로 찾은 관광객도 그 정도다. 사람 따라 문화와 재화가 흐른다. 요즘 청계천이나 세종로에서는 일본말이나 중국말을 하는 관광객들을 자주 본다. 일본 관광객도 거리낌이 없다. 이들을 대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유연해졌다.
3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문제도 현안이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은 우리와의 체결을 꺼린다.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전쟁으로 싸운 프랑스와 독일이 유럽공동체를 꿈꾸고 있듯 우리도 전향적으로 나가 보자. 요즘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유행이다. 일본에도 시코쿠의 절 88곳을 도는 오핸로 순례길이 있다. 일본의 맨얼굴을 볼 수 있단다.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을 거친 뒤 그 길을 걸어보며 이해의 폭을 넓혀 보면 어떨까.
윤양섭 국제부장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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