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이 국회 행정안전위 소속 자유선진당 이명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처럼 국보이면서도 화재경보기와 CCTV가 없는 목조문화재는 모두 5곳이나 된다. 이 의원이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122곳의 주요 목조문화재(국보와 보물)의 실태를 조사해 보니 화재경보기가 없는 곳이 87곳(71%), CCTV가 없는 곳이 71곳(58%)이었고 33곳(27%)은 둘 다 없었다. 경북 안동의 봉정사 극락전(국보 15호)과 경북 영주의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18호) 같은 유명 문화재의 경우 CCTV는 있지만 화재경보기는 없었다. 심지어 소화전이 없는 곳도 7곳이나 됐다.
화재에 취약한 목조문화재의 소방시설이 이처럼 허술한 것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 지난해 2월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타자 정부는 2005년 4월 강원 양양 낙산사 화재 직후와 마찬가지로 “서둘러 대책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목조문화재를 방화관리대상에 포함하고 소화전 등 소방시설과 자동화재속보설비(화재경보기)의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관련 법령이 개정된 것은 숭례문 화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난 올해 2월이었다. 그나마 시행은 내년 2월까지 하도록 유예기간을 뒀다. 결국 숭례문 화재가 일어난 지 2년이 돼서야 정부 대책이 실행되는 셈이다.
이 의원은 “법령을 늦게 개정하고도 시행 유예기간까지 둔 것은 안이한 행정의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지금도 CCTV와 화재경보기를 설치하는 게 어렵지 않은데도 시행 시기를 핑계로 미루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이 ‘문화재 소방방재시스템’ 구축을 맡은 문화재청에 진행 상황을 묻자 “올해 4억 원의 예산으로 문화재 구조·특성 파악과 화재진압기법을 개발 중”이라는 짤막한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화재감지기 설치까지 의무화하고 소화전에 충분한 양의 ‘맑은 물’을 저장하도록 상세히 규정한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의 대책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나마 이를 제때 시행하지 못해 문화재보호에 공백이 생긴 틈에 혹시 ‘제2의 숭례문 화재’가 일어나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김기현 정치부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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