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산가족 상봉에 ‘조건’ 달지 말라

  • 입력 2009년 9월 28일 03시 04분


북한의 장재언 조선적십자회 위원장은 그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환영하는 만찬사에서 “(상봉이 이뤄진 것은) 6·15공동선언의 넋인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이 살아 있기 때문”이라며 “6·15선언과 10·4선언의 이행만이 이산가족의 앞날을 보장해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유종하 대한적십자사 총재에게 “이번 상봉은 북에서 특별히 호의를 베푼 것이니 남에서도 상응하는 호의를 표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북은 ‘민족끼리’를 앞세우면서도 ‘혈육의 정을 이어주는 일’조차 결국은 흥정의 대상으로 삼고 손을 내미는 형국이다.

이산가족이 생기고, 그들이 생사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수십 년간 생이별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누구 탓인가. 북이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키지만 않았어도, 무고한 우리 국민을 납치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비극은 없을 것이다. 북측이 이산가족 상봉을 ‘남측에 대한 특별한 호의’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들에게 진정한 ‘민족끼리’ 정신이나 인도주의에 대한 인식이 결여돼 있음을 드러낸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약 2년 만에 재개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이번 추석 상봉에서 만나는 이산가족은 국군포로와 납북어부까지 포함해 196가족 677명에 불과하다. 남쪽에서 상봉을 신청한 인원만도 6월 현재 12만7343명이다. 신청자의 76%는 70대 이상이고 3만9000명은 이미 사망했다. 고령 사망자가 갈수록 급증하는데 지금처럼 몇백 명 단위로, 그것도 정치적 이벤트로 찔끔찔끔 만나게 해서는 이산가족의 애간장만 더 태울 것이다. 이야말로 ‘반(反)민족’이다.

이산가족들이 생전에 한 명이라도 더 생사를 확인하고 만날 수 있게 해주려면 남북 당국이 머리를 맞대고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남북관계가 다른 정치적 이유로 긴장상태를 보이더라도 이산가족 상봉만은 영향을 받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정부도 최선을 다해 북을 설득해야 하지만, 북은 인도주의와 인류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 조건 없이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과 상봉, 상호 방문에 협조해야 ‘민족끼리’라는 말을 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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