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이경훈 위원장과 이정현 의원

  • 입력 2009년 9월 28일 20시 02분


26일 조간신문에 실린 한 장의 사진. 이경훈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 당선자를 끌어안은 한 근로자는 울먹였다. 이 당선자 역시 비슷한 표정이었다.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했다는 단순한 기쁨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 휘둘려 원하지도 않는 파업이나 정치투쟁에 내몰려야 했던 그간의 서러움, 이제야 우리 식의 노동운동을 하게 됐다는 안도감 때문 아니겠는가.

이 당선자는 투쟁보다는 안정, 이념보다는 실용을 추구하는 현장 노동조직인 ‘전진하는 현장노동자회’ 소속이었다. 노동운동의 관행을 바꾸고 싶어 1997년부터 계속 노조위원장 선거에 출마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내리 6번이나 낙선했다. 이번 승리는 결국 현대차 노조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야 말겠다는 이 당선자 개인의 투지와 그에 화답한 조합원들의 갈망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 어찌 보면 이경훈 당선자와 비슷하다. 호남 출신(전남 곡성)이면서 ‘불모의 땅’ 호남에 기필코 한나라당 국회의원 깃발을 꽂고야 말겠다는 투지를 불사르고 있다. 그는 지금 국회의원이긴 하지만 비례대표이다. 영남권의 대표적 정치인인 박근혜 전 대표의 최측근인 것도 특이하다.

이 의원은 대학 4학년 때인 1985년,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를 역임하고 12대 총선에 출마한 구용상 전 의원(작고)에게 “정치 똑바로 하라”는 편지를 보낸 게 계기가 돼 당시 민정당에 몸담게 됐다. 1995년 자신이 직접 ‘바른 정치’를 해보려고 민자당 소속으로 광주시의원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탄핵 역풍’이 몰아치던 2004년에는 한나라당 소속으로 광주 서구을에서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주변에서 “호남에서 한나라당은 공산당보다도 더 싫어하는 존재인데 뭐 하러 욕먹을 짓을 사서 하느냐”고 만류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건넨 명함이 면전에서 곧바로 갈기갈기 찢기는 수모도 겪었다. 눈길을 끌어보려고 결혼식 폐백 때 신랑이 입는 옷을 빌려 입고 선거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고작 720표(1.2%)밖에 못 얻었다.

그는 지금 호남 전역을 지역구로 여기고 뛰고 있다. 포기할 수가 없어서다. 호남과 관련된 일이면 누구보다 앞장서 챙긴다. 지난 1년간 국회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호남고속철과 9개 산업단지 진입도로 관련 예산을 삭감하려는 민주당 의원들과 싸워 그대로 지켜냈다. 그 덕에 “호남 예산 지킴이” “민주당 의원들보다 더 호남을 아끼는 한나라당 의원”이란 평판까지 듣고 있다.

이 의원이 바라는 건 호남의 변화이다. 호남이 달라지면 민주당이 바뀔 것이고, 그러면 한나라당과 국가까지 달라질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호남인들에게 말한다. 발전을 바란다면 인물 위주의 정치 경쟁을 붙여 누가 호남을 위해 더 많은 일을, 더 잘할 수 있는지를 놓고 선택하는 ‘수지맞는 장사’를 해야 한다고. 그러면서 민주당에는 공개 도전장을 던졌다. 지역감정에 의지해 공천과 동시에 개표시간만 기다리는 반사이익의 정치, 부전승(不戰勝)의 정치를 그만두고 정정당당하게 겨뤄보자고. 한나라당에는 “절대 호남을 포기하지 말라”고 간청하고 있다.

이 의원이 호남 지역구에서 이기는 날 다른 지역도 함께 변해 있을 것이고, 그 ‘천지개벽’이 어우러져 정치가 국민에게 새 희망의 빛을 쏠 것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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