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인하에 대한 방통위의 공식 입장은 시장 경쟁을 통해 통신업체가 자율적으로 요금을 낮추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이런 입장을 발표할 때 방통위는 기업 관계자들을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은 ‘요금인하 유도’로 표현을 바꿨고, 통신업체 관계자들을 대거 배석시켰다. 입장 변화의 배경에 대해 신 국장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답했다. ‘불가피한’ 상황이 뭔지 묻자 그는 “소비자들의 요금인하 요구와 언론의 압력 탓”이라고 밝혔다. 방통위는 자체적으로 내건 ‘시장’과 ‘자율’이라는 원칙을 스스로 훼손한 셈이었다.
통신업체도 나을 건 없었다. 업체들은 매년 경쟁을 통해 요금을 인하하겠다는 약속을 소비자들에게 반복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초고속인터넷과 인터넷TV, 휴대전화 등 다양한 통신상품을 한 통신사로 ‘몰아쓰기’ 할 때만 제공하는 ‘결합상품 할인’뿐이었다. 그동안 통신업계는 일률적인 요금인하는 ‘반(反)시장적’이라는 이유로, 신규 투자가 필요한 요금 체계 변경은 소비자에게 투자비용이 전가될 수 있다는 이유로 기피했다. 그랬던 업체들이 이날 발표한 주요 정책은 가입비를 현재보다 일률적으로 낮추고 통신요금 계산을 10초 기준에서 초당으로 바꾸는 방식 등이었다.
어쨌든 크지 않은 액수나마 소비자의 부담이 줄었다는 것은 반길 일이다. 하지만 경쟁을 활성화하는 제도가 도입된다면 요금을 더 내릴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는 AT&T와 버라이즌 등 거대 통신업체 외에도 트랙폰과 같은 소규모 통신업체가 존재한다. 거대 통신사의 망을 빌려 선불제 전화 등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다. 이런 업체가 늘면 경쟁이 활발해지게 마련이다.
사업자를 단시일에 늘릴 수 없다면 통신업체들의 요금 부과 기준만 소비자에게 상세하게 공개해도 요금인하 경쟁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단위시간당 통화요금 정도의 간략한 정보만 소비자에게 제공돼 여러 회사 요금을 꼼꼼하게 비교하기가 어렵다.
이런 내용들은 이미 정부가 몇 년째 검토해 온 일이다. 중요한 건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한국의 통신산업은 몇 년째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그동안 정부는 자율과 경쟁을 얘기하면서도 규제와 보호에 급급했던 측면이 있다. ‘관치통신’의 흔적을 이제는 지울 때가 된 것 같다.
김상훈 산업부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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