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희상]‘그랜드 바겐’ 그 다음의 전략적 구상

  • 입력 2009년 9월 30일 02시 57분


이명박 대통령이 ‘그랜드 바겐’, 북핵문제의 ‘일괄 타결’ 방식을 제안했다. 충분히 타당한 제안이다. 일찍이 6·25 휴전회담 대표인 터너 조이 제독은 북한의 회담 전술을 ‘살라미 전술과 벼랑끝 전술’이라고 했다. 햇볕정책 10년간 비핵화와 대북지원이 단계별로 묶여 있던 기존 접근방식이 북한의 이런 수법에 농락당해 북핵 해결은커녕 오히려 핵개발을 뒷받침해왔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6자회담 5개국의 합의가 이루어지면 북한도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때마침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1887호를 보면 더욱 희망적이다. 북한 핵 쳇바퀴가 다시 도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없지 않지만, 국제사회의 여건과 분위기가 바뀌었으니 북한에 한 번쯤 기회를 더 주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우선 국제적 공조체제를 다지면서 대화 중에도 대북제재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가 함께 만들고 쌓은 정책적 틀과 효과를 확고히 유지해 북한이 ‘그랜드 바겐’에 호응해 오도록 최선을 다할 일이다. 그랜드 바겐 그 다음의 전략적 구상도 있어야 한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발전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오늘날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은 김정일 체제 그 자체의 모순 때문이다. 북한 경제의 연착륙도 체제가 바뀌고 개방이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것이 통설이다. 우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더욱이 오늘의 북한에서 핵은 김정일 체제 정통성의 증거이자 권위의 상징이요, 먹고사는 수단이자 대외 교섭력의 바탕이다. 이른바 ‘적화통일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북한이 일괄타결안(案)에 호응해 핵을 포기할 것인가 하는 것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당연히 북한은 지금까지의 패턴을 유지하려 들 것이고 필요하다면 극한적 도발과 협박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예상외의 높은 긴장이 조성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여기에 굴복하면 단순히 햇볕시대의 실패를 반복하는 정도를 넘어서 자유대한의 미래에 회복하기 어려운 상흔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랜드 바겐을 위한 노력 못지않게 이런 비상 상황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역사에서 배우는 전략적 태도다.

특히 ‘현실적으로 북핵을 인정하고 확산만 막으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 우려스럽다. 여기에 완벽한 대비를 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북한 핵위협에 대한 억제다. 억제란 본래 심리적인 것이어서 완벽한 대비책은 아무것도 없고, 이 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비책은 연합사로 체계화된 한미 군사동맹 체제의 강화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연합사를 해체해도 ‘핵우산’은 제공된다지만 실은 연합사가 서울에 주둔하는 그 자체가 가장 효과적 핵우산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 역시 항구적인 대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더욱이 우리에 대한 북한 핵의 위협은 미국 핵우산으로도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크다. 예컨대 북핵은 북한의 다양한 도발을 부추기면서 그에 대한 우리의 효과적 대처는 어렵게 하고 유사시 미국의 지원도 쉽지 않게 만들 것이다. 평화가 유지된다 해도 노예적인 평화가 되고, 북한 간접침략의 효과는 극대화될 것이다. 이래저래 한국이 북핵의 인질이 되어 점차 한반도 적화의 길로 끌려들어갈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로서는 당면한 위협을 최대한 억제한 가운데 너무 늦지 않게 ‘항구적 해결책’을 강구하는 수밖에 없다.

2007년 2월 리처드 아미티지는 2차 보고서에서 ‘한반도가 자유민주체제로 통일되지 않는 한 북한의 항구적 핵 폐기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는데 많은 전문가가 여기에 공감한다. 우리가 싫든 좋든 한반도 통일번영의 미래를 서두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 아닌가. 북한이 그랜드 바겐을 수용하지 않으면 국제사회도 여기에 공감할 가능성이 있다. 시대를 꿰뚫어 보며 지극히 지혜로운 전략적 구상으로 새로운 미래를 주도적으로 열어 나가야 할 때다.

정부가 내년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유치해낸 쾌거도 그런 지혜와 노력의 결정체였다. 이번 성공은 그래서 더욱 희망을 준다. 그러나 무릇 모든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오는 법이다. 우리의 전략적 구상과 준비가 완전할수록, 특히 그 의지가 확고할수록 북한이 호응해올 가능성은 더 높다.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민족사적 기회를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희상 객원논설위원·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 khsang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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